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Dec 31. 2021

열심히 도와준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아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학급회장이 된 이후, 아이는 더욱 자신감이 붙었고,

5학년 부회장 선거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이가 부회장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내가 할 일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선거 일정에 맞춰서 공약을 만들고, 홍보를 위한 벽보와 피켓을 준비하고, 동영상까지 제작해야 한다는 것.


나와 하늘이는 몇 번 미팅을 하며, 공약을 세운 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총동원했다. 나는 벽보에 붙일 사진을 촬영하고, 직접 글씨를 쓰고, 마카로 색칠을 하며 벽보를 만들었고, 하늘이는 그 사이, 공약을 줄줄 외우며 연설을 준비했다.


벽보가 학교 현관에 붙었을 때, 아이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엄마, 내 벽보가 젤 예뻤어. 다른 후보들은 컴퓨터로 글씨를 뽑아서 만들었는데, 나만 엄청 정성 들인 느낌이 났어. 사진도 그렇고."


너무도 뿌듯한 마음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글자를 하나하나 잘라 붙이며 또다시 필요한 4개의 피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함께 준비하기로 했는데도 그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서두르는 조급함이 일어났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아이는 내가 입술을 부르트며 만든 벽보와 피켓, 그리고 함께 촬영하고 자신이 직접 편집한 동영상으로  당당히 부회장 선거에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이 됐다.


퇴근 무렵, "엄마!! 내가 부회장이 됐어!!"라며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말투로 울먹이는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물론 나도 너무 기뻤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편에서 이상한 긴장과 부담감이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잉?? 이건 뭐지?'


집으로 향하며 어둠에 잠기고 있는 석양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니, 새삼 아이가 커간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집에 도착하니 하늘이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얼굴엔 가득한 기쁨과 승자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엄마, 이제 부회장 됐으니 공약 지켜야겠네. 재밌겠다!!ㅎㅎ

엄마, 수지반에 아이들은 모두 나를 뽑았대"


"수지가 노력을 많이 했네, 잊으면 안 돼. 하늘아,

부회장이 된 것은 너 혼자된 게 아니라는 거. 알았지?"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잠깐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하늘이의 당선 소식이 관한 이야기였고,

대화의 끄트머리에서 동생의 한마디가 미묘하게 심기를 건드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지, 요즘은 선거도 어른 개입 없이 애들끼리 준비하는 곳도 있다더라."


그 말인즉은 내가 선거 준비를 직접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하늘이가 안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모든 아이들이 동일하게 부모가 도와줬다고 가정했고 (대게는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유독 내가 솜씨를 뽐내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당락을 결정하진 않는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무언가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개운치 않은 감각을 한차례 더 꼬집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담임선생님께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 들과 함께 후보 영상을 보며,

"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말씀하시며, 너무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고 했다.

선생님의 전화를 끊고 나서,

4학년이 얼마 남지 않아 담임선생님과의 작별이 너무도 슬프다며 아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 안에서도 다양한 흐뭇함과 미묘한 마음이 일렁일렁, 일어났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2층에서 내려온 조카가 던진 한마디에 숨기고 있던 진실이 입 밖으로 불쑥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언니, 애들이 그러는데 NG 모음, 되게 웃겼대"


 조카의 말에 하늘이매우 흐뭇해했고, 반대 편에 있던 나도 대꾸를 했다


"아, 그거 내가 하늘이한테 아이디어를 준거야."


"그거? 엄마가 아이디어 준거 아닌데?"


"내가 영상 촬영하면서, 그거 넣으면 재밌을 거라고 했잖아"


"아니야, 그거 내가 생각해낸 거야."


"무슨 소리! 네가 영상이 짧아서 시간이 남는다고 했을 때, 엄마가 NG 넣으라고 했잖아"


"아니야."


잠시 엄마와 초등학생 딸의 웃기지도 않는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급기야 나는 아이의 태도를 지적하고 말았다.

것도 감정을 하나 가득 담아서


"하늘아, 난 엄마니까 괜찮지만, 만약에 친구가 도와줬을 때 너 그렇게 말했다가 친구랑 사이 멀어지고 안 좋아지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돼. "


"........ 내가 한 거 맞는데"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하듯 대답했고, 나는 아이에게 바로 못을 박듯 말했다.


 "하늘아, 그거 엄마가 하자고 한 거 맞아! 잘 생각해봐!. 엄마도 생각해 볼 테니"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마치 나 혼자 잘해서 된 것 같은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그 착각을 방심하면, 반드시 우월감이 생겨나고 우월감은 불행으로 향하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라고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 직전까지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내 안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손가락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전혀 자각할 수 없었다.


하늘이의 부회장 선거를 함께  준비했던 나, 는

어느 순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 버렸다.

마치 내가 선거에라도 나간 것 같은 착각, 아이를 통해 나의 열등감이 해소된 것 같았던 망상,


그런 이유로 아이의 당선에 순도 100프로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부회장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기쁨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던 부담감의 정체는

바로 '내가 해냈다'는 말도 안 되는 자아의 환상적인 착각 때문이었다.


"엄마, 이제 부회장 됐으니 공약 지켜야겠네. 재밌겠다 ㅎ"라고 말하는 하늘이와 반대로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까지 들었으니,


 그것은 내 몫이 아니고, 다른 임원들과 하늘이, 그리고 학교의 몫일 텐데도 말이다.


아이는 부회장 선거가 인생에서 처음이었고, 누군가 준비하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경험이 많은 어른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다.

하늘이의 승리는 그렇게 이뤄낸  빛나고 가치 있는  성과였다.


아이는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 역시 아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후보 영상입니다.






2021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2021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저에겐

이렇게 글로 만나 뵙게 되어 너무 영광인

한 해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 구독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엇보다

언제나 건강이 최고라는 것 아시죠♡

2022년은 모두 분들의 삶에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3-8. 신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