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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ul 04. 2022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엄마와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아, 좀, 그냥 좀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텐데, 왜 자꾸 일흔이 다 되어 가는 엄마를 가르치려고 안달일까.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오셨다. 암흑 같았던 시대, 남아선호 사상이 짙었던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살림 밑천이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난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만나 남자들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냈다. 누가 나에게 엄마처럼 살라고 한다면, 절대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우리 세대가 아무리 어렵게 살아봤자, 우리네 부모들이 살아온 격변의 시대에 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잘 알면서 나는 무슨 근거 없는 믿음으로 엄마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꾸 가르치려고 할까?


“그냥 막내는 어린이집에 보내. 엄마. 하늘이도 그렇고, 너무 잘해주려고 하지 마. 엄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한테 충분히 도움이 된다니까.”


말은 참 그럴듯하게 엄마를 위한답시고 하지만, 말투는 그다지 상냥하지 않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나의 수치의 대상이었다. 어딜 가든 쌈닭이었다. 버스를 타면 초등학교 3학년인 나를 유치원생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며 버스 기사님과 싸우기 일쑤였고, 시장에 가서는 물건값을 깎기 위해 혹은 하나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다가 사과 한 개를 얼른 집어 들고 도망치듯 걸어갈 때면, 뒤통수에서 야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불문, 성별 불문, 안하무인,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엄마가 가게를 할 때였는데, 가게 앞에 내놓은 물건에 누군가 손을 대고 있었다. 버리는 물건인 줄로 알고, 폐품을 수집하려던 어르신이 엄마에게 딱 걸린 것이다.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버릴 것 하나도 없으니까 얼씬도 하지 말라며 허리가 구부러진 어르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아무리 내가 옆에서 설명하고, 말려도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기세에 할머니는 눈가가 촉촉해지셔서 자리를 뜨셨고, 나는 울분을 참으며 “제발 좀 그러지 좀 마!!” 라며 엄마에게 몹시 화를 냈다. 


Bogdan Glisik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645840/


며칠째 동네 산책로에 범산목장의 우유배달 판촉이 나와 있었다. 당연히 엄마가 무료로 주는 우유 샘플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삼 일 전, 하늘이와 엄마와 산책을 나왔다가 우유 가격을 문의하고는 바로 ‘배달 주문서’를 작성하면서 양손 가득 우유 샘플을 얻어 집으로 왔다. 



다음 날이었다. 다시 우유 부스가 보이자, 엄마는 무료 우유를 얻겠다며 또다시 부스로 향했다. “엄마, 어제 받은 것도 아직 많아.”라고 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는 우유를 받아냈다. 그리고 오늘, 우유 부스를 발견하는 순간,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오늘도 하나 더 받아내야지,”라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엄마, 그만 좀 해!”


“ 뭐 어때, 어차피 공짠데.”


“어제도 받았잖아? 아, 진짜, 그만 좀 하라니까.”


내 말은 당연히 아랑곳하지 않고 그사이, 엄마는 결국 우유를 받아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엄마, 그만 좀 해, 엄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뭘 이기적이니? 어차피 저 사람들도 다 공짜로 판촉용으로 받아오는 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저 사람들 자선 행사하는 거 아니야. 영업하러 나오는 건데, 그걸 꼭 그렇게 받아야겠어? 저 사람이 엄마 자식이라고 생각해봐? 그렇게 되겠어? 하나라도 더 나눠주고 팔아라 하지 않겠냐고!”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고, 집으로 들어왔다. 식탁 위에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나간 노각 무침이 커다란 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싱크대 개수대에는 노각무침과 밥한 공기 뚝딱하며 비워낸 밥그릇이 보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무치고 있는 노각무침과 함께 내가 먹은 밥그릇이었다. 정리할까, 하다 양이 얼마 안 된다는 핑계로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독서를 했다. 소화하지 못한 음식물이 부패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더부룩했다. 오랫동안,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외면했던 마음의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Lisa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039452/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고, 앉아있는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엄마는 이미 주방 정리를 말끔히 끝내고 계셨다. 


우리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엄마였다면? 그래도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아마도 '그럴 수도 있지', 라며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라는 이유로 용납되지 않는 것들이 많듯이,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우리 엄마라는 이유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것들도 너무 많다. 



‘옳은 말이 옳은 것일까?
옳은 말은 결코 옳지 않다.
옳은 행동만이 옳을 뿐,’




부끄러웠다. 내가 먹은 밥그릇 설거지를 엄마한테 미루고 있는 나는, 언제쯤에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엄마가 타 온 공짜 우유는, 결국 하늘이의 입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늘이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엄마는 기어이 공짜 우유를 타 오신다. 일흔이 된 엄마에게 딸아이를 돌보게 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먹은 밥그릇을 떠넘기는 내가, 도대체 누구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하며, 누구를 걱정하는 것인가.



너나 잘하세요. 장혜진 씨. 그리고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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