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인구 감소, 돌아온 청년들의 삶
*청년 창업가로 살아가며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청년 창업가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독백합니다.
인구가 겨우 12만 인 이곳, 푸른 바다가 품은 마을. 안타깝게도 인구는 더 가파른 속도로 감소 중입니다. 바다 위 윤슬을 바라보노라면 슬프게도 머지않아 도시가 소멸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이곳은 고령화가 진행된 지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노년층 인구마저 하나, 둘 줄어듭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머물던 동네는 허물어져서 새 도로가 트이거나,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한 때 시내라고 불리었던 동네에는 텅 빈 점포가 줄줄이 늘어져있습니다. 낡은 점포마다 빛바랜 임대 현수막이 걸려 수취인 없는 고지서가 뭉텅이로 쌓여있지요.
이 도시에서는 '취업'이라는 개념이 다소 어색합니다. 기업도, 회사도 점차 줄어들고 공공기관과 병원만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킬 뿐이에요. 20살이 되어 커다란 꿈을 안고 타 지역으로 떠났다가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 많은 청년들이 대다수는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합니다. 시에서는 무진장 애를 쓰고 있어요. 빠져나가는 청년층을 잡기 바빠요. 창업 지원을 해준다고 말이죠. 구도시를 살리기 위해 청년층을 끌어당깁니다. 마음껏 꿈을 펼치라는 거창한 타이틀 아래 낡은 상권을 활성화시켜 보라는 의도가 있죠.
지방의 현실을 마주한 청년 자영업자
자영업을 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어요. 1인 운영으로 느끼는 고립감, 체력적 한계, 인구 감소에서 이어지는 매출 한계로 경영난, 고용난 등....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 모습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워요 그래서 더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그 노고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죠. 홀로 감당해야 할 일들로 하루하루가 너무나 벅차거든요. 홀로 가게를 운영하고, 늦은 시간 퇴근을 하고 나면 놀러 갈 곳은 한정적이에요. 밤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 잔 당기는 것이 낙이라면 낙입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낭만이죠.
자유 속에서 느낀 고립,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뒤이어 체념과 수긍을 거치고 어느 순간 이 환경이 익숙해졌어요.
"이곳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사는 것도 괜찮을지도 몰라."
에어팟을 두 조각으로 부순채 잃어버려도, 줄 이어폰을 사용해도, 그마저 잃어버려도, 지갑이 없어도,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바깥으로 나와 길을 걸어도 평온한 삶. 썩 나쁘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이 안정적인 익숙함에 매몰될 뻔했습니다.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3개월 만에 다녀온 서울은 그 짧은 새 또 변해있었어요.
마치 20살에 처음으로 상경했던 서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냥 낯설었어요.
"아, 맞아 서울은 이런 곳이었지.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현실에 안주하다가 도태될 것 같은 위협을 받았어요. 아직 이곳에서 안주하기엔 너무 어리고, 나의 열망을 펼치기에 작은 곳이라 판단했어요. 더 많은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더욱 단단해진 만큼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그럼 다시 떠나자!
타 지역, 다른 나라에서 많은 경험을 거치고 온 청년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에 점점 숨통이 조여옵니다.
차라리 큰 세상을 보지 못했더라면 이곳에서의 여유로운 삶도 나쁘지만은 않았겠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려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정반대의 사람들, 선택의 차이
반면, 저 같은 사람과 정반대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겨운 고향을 떠나려는 자 VS 이곳만의 정취를 누리려 새로운 터전을 잡는 외부인
지겨운 고향을 떠나려는 자들은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에 쉽사리 떠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소도시만의 고요함, 아른거리는 바다, 자연의 정취에 반해 터전을 잡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개는 예술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 가치관이 맞는 부부들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이었어요.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를 하며 수입의 원천이 한 지역에 얽매여있지 않다는 특징도 있었습니다. 이미 대도시의 번잡함을 오랫동안 경험하고 이와 상반되는 도시를 찾아 내려온 거죠. 비교적 저렴한 집 값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건 문제도 아니니까요.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한 지인 부부와 이런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작자) "저는 여기가 너무 답답해요. 타 지역에 있다가 돌아온 제 친구들도 그래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어떻게 여기로 내려온 거예요?"
(지인) "조용해서 좋아. 서울에 있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해서 에너지 소모가 커. 이곳의 삶은 일이랑 분리되니까 편안해. 그래도 너처럼 여기가 고향인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우리는 선택해서 온 거지만, 고향인 사람들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도 있으니까."
결국, 이 삶을 선택을 한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올랐어요.
영화「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장면.
그래도 아름다운 건
텅 빈 상가들이 줄줄이. 그럼에도 발견할 수 있는 이곳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멈춰버린 시간'
끊임없이 바뀌는 상가 자리가 있는 반면, 어떤 상가는 몇십 년째 한 곳에 머무릅니다. 낡아버린 외관을 수리하지도 않아요. 지나갈 때마다 여전하네라고 10년째 말하기도 해요. 오랫동안 한 곳에서 하나의 일을 꾸준하게 이어오는 이들의 삶도 대단히 존경스럽습니다.
① 어린 시절 다닌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마크사. 새 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이름표를 받으러 다녔는데 이런 글귀가 창문에 붙어있는 것을 작년에 처음 발견했어요. 메시지가 깊어요.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왔습니다.
② 오래된 컴퓨터 세탁소 앞, 긴 세월을 지나 요즘 열풍인 레트로 느낌의 커피 자판기. 여전히 따뜻한 커피를 내리는 중이에요. 참 신기해요. 새것에서 헌 것으로 가치가 떨어졌다가 레트로 열풍으로 다시 귀중해진 물품. 작동이 가능한 것은 더욱 가치가 높아져요.
③ 작은 마을의 허름한 국밥집, 대문에 손글씨로 쓰인 글을 보면 가게의 주인이 얼마나 따뜻한 육수를 끓여내고 있을지 온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영업 시작 전이라 한 그릇 못 먹고 돌아온 게 하나의 아쉬움.
모든 사람의 모든 길을 응원해요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찾아 나서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길이 옳다 그르다고 단편적인 시선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어요. 나에게 맞는 삶, 당신에게 맞는 삶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방향을 향해 전진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개척하는 삶, 저는 또 새로운 도약을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