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다 보니 별게 다 보인다

누군가의 대출증

by 아이스블루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 구립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매번 읽고 싶은 책을 사지 않고도 얼마든지 빌려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원하는 책을 모두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구해서 읽을 수 있어서 책값이 만만치 않은

요즘 같은 세상에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의 전당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독서 방법이 없지만 문제는 책을 아주 가끔 읽는다는 것이다.

집에서도 가깝고 대여비도 공짜에 책도 많은데 이렇게 좋은 혜택을 앞으로는 더 실컷 누려야겠다.


책대여뿐만이 아니라 혼자 공부하는 독서실로, 또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노트북 실>은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할 때 키보드 사용 시 생길 수 있는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서 이용료가 들어가는

스터디 카페의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조금 걸어가야 하는 거리이긴 하지만, 도서관에 다다를 무렵에는 학교 담벼락을 따라 운치 있게 서있는

가로수가 하도 멋져서 일부러라도 걷고 싶은 길이다.

그래서 도서관 가는 길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점점 나이가 들고 버거운 삶을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기댈 곳이 필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학과 인문학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인문학에 관련된 책을 빌려 보았는데 오늘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로

몇 권 추려보았다.

한 가지가 생각나면 그 분야의 책을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서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기가 귀찮아서 그 주변만 맴돌다 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같은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비슷한 책만 골라오게 된다.

나는 확실히 후자 쪽인 것 같다.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하자고 늘 다짐해 보지만 한 번에 여러 종류의 책을 빌려오는 일은

아주 드물다.




2년 전에 나와 똑같은 책을 대출했던
사람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출처-unsplash




집에 와서 책을 하나 펴 들었을 때, 길쭉한 종이 하나가 무심하게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빛바랜 대출증이다.

이 사람도 대출증이 나오면 쓱~ 뽑아서 책 사이에 끼워 넣는 버릇이 있나 보다.

그렇게 책갈피로 사용하다가 까맣게 잊은 채 반납하면 오늘처럼 다음에 대출한 사람이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2년 동안 아무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발견했지만 꺼내서 버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가?

그 사람 역시 비슷한 종류의 책으로만 4권을 빌렸다.

모두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들이다.

어쩌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패턴이 남들도 나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성격은 어떨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궁금해졌다.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던지 아니면 나처럼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취향이나 관심사가 나와 비슷할 것이다.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같은 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닮은 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무슨 근거로 하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이라면 다른 이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름 하나 끼워져 있었다고 유독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빌려온 책사이에서 다른 사람의 대출증을 발견한다는 것은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평범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인가 보다.

묵은 대출증에 인쇄된 낯선 이름하나가 나와 상관도 없는 누군가를 괜히 궁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