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가방
남자에게 가방이란 뭘까?
옛날사람인 나에게는 시계와 더불어 남자가 멋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템정도로 생각될 뿐이지만,
성별을 초월하여 이제 자신을 가꾸는 일에 쓰이는 아이템은 정말 다양해졌다.
여자인 나보다도 잘 꾸미는 남자들도 물론 넘쳐난다.
얼마 전, 드디어 남편이 정말 오랫동안 찜해두었던 슬링백을 장만했다.
사악한 가격 탓에 내 눈치를 보다가 짝퉁을 산다길래 짝퉁으로 산다면 앞으로의 가방 쇼핑은 없을 거라며, 남편이 정말 원하는 것으로 사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남편의 물건 고르는 눈은 유난히 까다로워서 웬만해선 마음에 든다는 물건을 찾기 힘들고, 필요한 아이템이라도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차라리 없이 살겠다는… 참 자신을 애써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휴~
그런 사람 눈에 들어온 가방이기도 하고 기왕에 사는 거 비싸더라도 마음에 쏙~드는 것으로 사는 것이
결국은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란 걸 오랜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결과가 뻔한 딜을 한 셈이다.
오랜만에 우린 쇼핑에 나섰고, 남편이 웬일로 아끼던 새 가방을 챙기길래 남편 가방만 믿고 난 가뿐하게
미니 백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크고 무거운 가방이 싫어진다.
명품 가방이라도 무거운 건 no thanks 다.
하나 둘 쇼핑백이 늘어나니 들고 다니던 게 거추장스러워지고, 이때 써야 하는 것은 뭐??
남편찬쓰!!
나: 우산 좀 넣어줘~
남편: 안 들어가~
나: 겉옷 좀 넣어줘
남편: 안 들어간다니까-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값비싼 명품 브랜드는 아니어도 지금까지 가성비가 좋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춘 제품을 선택하고
물건 고르는 눈이 까다롭던 남편에게는 이것이 자신만의 명품이었고, 그래서 더 오랜 시간 동안 구매를 망설여왔던 것이다.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가방을 감히 우산이나 점퍼 따위로 형태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걸 난 잊고 있었다.
남편에게 있어서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에는, 원하는 걸 찾기 전까지 타협하지 않을 의지와 끝까지 버티는 인내가 필요하다.
의지와 인내…
나는 지금 쇼핑 얘기를 하고 있는 게 맞다. ㅎㅎ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우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오늘도 아이패드 하나 달랑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