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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네 Nov 17. 2022

#1 말 잘 듣는 착한 엄마

브런치 작가 신청

딸과 둘이 식사를 할 때면 종종 와인을 마신다.

남겨둔 피자와 딸이 만든 파스타, 그리고 세일가로 사둔 화이트 와인 한 병으로 딸과 둘만의 저녁을 먹는 시간.


딸들과 식사를 할 때면 TV 정규방송이 아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오늘 딸이 선택한 것은 '브런치 작가 되기' 관련 유튜브 영상이다.

딸은 이미 책을 한 권 출판한 작가이고 브런치 작가 신청도 한 번에 통과한 능력자다.

날 닮아 글을 잘 쓴다는 얘길 듣던 꼬마가 20대 중반이 되어 어엿한 작가가 되어 있다.




딸은 말한다.

"엄마는 글을 잘 쓰니까.... 블라 블라"

딸이 말하는 입모양만 바라보며 난 생각한다.

'난 글을 못 써'


딸은 말한다.

"엄마가 유튜브에서 내레이션 하는 것들이 다 엄마가 쓴 글이잖아. 그걸 다듬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면 되는 거야.... 블라 블라"

BGM처럼 떠들고 있는 TV 속 유튜버의 얼굴을 보며 난 또 생각한다.

'그건 영상에 맞춰 쓰는 글이잖아'


딸이 "엄마는 글 잘 쓰는데..."라고 말할 때 용수철처럼 내 입에서 튀어나간 말은 "자신감이 없어"였다.

"맞아, 엄만 자신감이 너무 없어"

딸이 수긍하며 다른 유튜브 채널을 선택한다.



브런치 작가에 신청하라는 딸의 잔소리(?)를 들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 하루 동안 조회수가 1000회도 나오지 않아 충격을 받았던 날, 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 작가 되기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편 본 후, 작가 소개글을 쓰고 또 몇 편의 영상을 본 후 목차를 쓰고 유튜브 영상 중 관련 영상의 내레이션을 손봐서 바로 작가 신청을 해버렸다.




오늘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라는 딸의 얘기를 들으며 난 메일 확인을 했다.

어제 신청했기에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메일을 한참 들여다봤다.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엄마 합격했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학창 시절 성적이 떨어졌을 땐 어떻게든 부모님 모르게 지나갔다가 다음 시험에서 등수를 올린 후에야 "저 1등 했어요"라고 말하던 때가 떠올랐다.


성적과 등수에 연연하며 스트레스받던 기억이 너무 싫어서 내 딸들에겐 성적 스트레스, 등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키웠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에 도전할 때면 그 딸들에게조차 나의 성적, 나의 등수를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그때의 나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냥 내 만족을 위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성공했을 때 내 만족으로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습관이라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이 참 아프고 슬프게 내 안에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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