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민 계획 앞에서 흔들린 마음

by eun

주말에 친구 가족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화 중에 친구 남편이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라 꽤 놀랐다.


왜 이민을 가려는지 묻자 한국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

그 부담을 결국 아이들이 짊어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상속세 문제도 컸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친구 남편은 고소득자이고, 경제 모임에서 꾸준히 공부해온 사람이다. 결혼 초에는 경제관을 두고 의견 차이가 컸다고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는 남편이 해내는 선택들을 보며 믿고 따라가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웃으며 “와, 놀러 갈게”라고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말처럼.


그런데 다음날 부터 마음 바닥에 화가 차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화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향한 화에 가까웠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화.

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내가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집보다 훨씬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 현실.


갑자기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아이들의 정서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와 선 학습 후 놀이를 선택해보려 했지만 아이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공부는 놀고 난 뒤 남은 시간에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면서 나도 편해지고 아이도 편해졌다. 아이가 학교로 향하는 길이 조금 더 밝아진게 보였고 그거면 됐다 싶었다.


지금은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니 이렇게 지낸다 하지만 여기저기선 중고등학교부터는 교육비에 큰 돈이 들어간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아이가 공부를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유학자금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자신의 길을 찾았을 때 그 길을 지원해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워낙 지금이 먼저고 긍정적편이라 그때는 또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가도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냥 내가 돈 벌거니까 그 돈으로 어떻게든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전부였다.


남편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기엔 결국 돈을 아끼라는 말이 돌아올 것 같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집 남편은 돈도 잘 벌고 경제 공부도 해서 아이들 교육비며 노후 준비까지 다 해두었다는 말을 들으면 부럽기만 했다.


그러다 그런 삶에는 또 다른 노고가 따라오겠지 싶어 내 선택을 합리화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면서 경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하루에 경제 신문 한 칼럼을 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경제서 모임에 들어가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읽고 싶은 책에만 눈이 갔다.


그러던 중 기존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이 경제서 모임을 열게 되었다. 알던 얼굴이 있으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내가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경제를 잘 모른다는 공통점만으로도 동지애가 생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런 분들과 함께 책을 읽고 하나씩 뭔가를 해나간다는 게 힘이 되었다.


두 번째 경제서를 읽고 나서는 내 노후에 대해 어렴풋이 그림을 그려보며 아이의 교육비에 대해서도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발도르프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읽으며 생활 속 작은 습관들이 하나씩 만들어졌고 그 습관들은 나와 가족들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경제서도 그렇지 않을까. 한 달에 한 권씩 열두 권을 읽고 나면 12월쯤에는 우리 가족의 경제에 대해 연필로 구도를 잡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없다. 다만 막연했던 불안이 이제는 그려볼 수 있는 스케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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