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8살, 둘째는 3살 27개월이다.
첫째가 24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을 거의 다 돌아봤다.
“내가 아이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면 언제라도 보내야지.”
하지만 생일이 늦었던 첫째는 결국 5살이 되어서야 유치원을 처음 갔다.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라는 확신이 들면 보내려고 두 군데 상담받았지만
27개월인 지금도 보내지 않고 있다.
첫째를 가정 보육하면서 외출해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많이 듣는 얘기가 있었다.
"왜 아직 안 보내요?"
"아이 사회성도 길러줘야죠."
"어린이집 보내면 말 더 빨리할 텐데... "이렇게 얘기한 사람들은
어떤 이는 어린이집의 장점을 5분 넘게 설명했고,
어떤 이는 아이에게 올가미처럼 굴면 안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 말은 오래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둘째를 가정 보육하면서는 왜 아직 안 보내냐는 질문에 부끄럽다는 듯, "제 성향이 안되더라요"라고 얘기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낮은 자세로 얘기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얼마 전에도 독서모임에서 만난 쌍둥이를 키우는 분께서 나에게 대단하다며 이건 박수 쳐줘야 한다며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었다.
나라고 힘들지 않아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육아하다 보면 유난히 힘이 드는 주간이 생긴다.
힘이 빠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아이에게 다가가는 대신 말로 지시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떠오르는 생각
이건 아니지 이럴 바엔 어린이집이 낫지 않을까?
그러다가도 다시 몸과 마음이 회복이 되면
‘역시 잠시 그랬던 거지’ 하고 어린이집에 보내려던 마음을 접는다.
나는 왜 아직 보내지 못하는 걸까.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무너지기 직전에 내 살길을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첫째를 키울 때는 멀리 떨어져있는 친구들과 전화하며 외로운 시간을 버티기도 했고, 첫째와 그림책에 빠져들어 그 시간을 보냈다. 둘째를 키우는 지금은 육퇴 후 독서모임과 하루 정리를 하며 나를 찾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육아가 힘들어 나가떨어질 것 같을 때면, 나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움직였다.
첫째의 40일이 넘는 여름방학 땐 여름방학 마지막 2주부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그게 5분이든 10분이든 무조건 나갔다. 그렇게 채워진 아침 에너지가 하루를 버티게 했다.
집안일을 쉽게 포기한다.
하루의 집안일은 식사와 설거지, 빨래만으로 채워진다. 거실에 널부러진 장난감과 수북히 쌓여있는 세탁물들은 일요일에 아이와 함께 정리한다. 에너지가 없을 때면 아이 옆에 최대한 오래 누워있는다. 그렇게 에너지를 보충한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할 때는 아로마 향의 도움을 받는다.
내게 힘을 줄 수 있는 오일이란 질문으로 인사이트 카드 세 장을 뽑고 그 향들을 바를 수 있는 바디 포인트에 오일을 바른다. 그러면 지금의 내 모습을 잠시 한 발짝 물러나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 번 전환이 되면 지금 하던 자로 다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이제는 지칠 때 어린이집을 떠올리기보다
지금 이 시간을 내가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를 더 자주 들여다 보고 있다.
나는 아직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는 엄마로 이 시간을 살고 있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이 시간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이어 준 시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