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손으로 머무는 시간에 대하여

by eun

『경험의 멸종』을 읽으며

나는 아이에게 어떤 것들을 해줘야 할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를 키우며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감정에 관한 책들을 집에 들였었다.


그 중 『우리 아이 첫 감정 연습』에서는

감정이 혼란스러울 땐 심호흡을 하라고 나와있었다.


정작 내가 화가 날 때는 그 심호흡이 잘 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심호흡하라고 얘기할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려니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알려주었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된 지금,

감정은 조절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부터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잘못된 감정은 없다고 이론에서는 말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짜증과 화 같은 감정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첫째 아이가 둘째 아이가 짜증 내는 상황에서

"짜증 내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감정이 주체되지 않을 때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도움이 될 수 있고,

감정이 너무 격해지기 전에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하루 사이사이에 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심해 할 수 있는 시간,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

촛불이나 잎사귀처럼

한가지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시간들.


예전 사람들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았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 반응을 따르며 살아갔다.


하지만 요즘은 몸이 느끼기 전에 먼저 이해하라고 가르친다.

감정조차도 "이 상황에 너가 이러는건 이 감정이어서야"라며 머리로 설명하려 한다.


『경험의 멸종』을 읽으며 손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손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더 빨리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며 느끼기 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부터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상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먼저 형태를 관찰하고, 그 형태감을 최대한 옮기려 작업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대상이 가진 색감에 집중하게 된다.

야외스케치를 나가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색을 따라가게 된다. 빛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기전에 그 순간의 분위기를 담고 싶어서 최대한 집중해 손을 움직이게 된다.


그 시간에는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지 않는다

나와 대상, 그리고 빛과 색만이 남는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해준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마냥 좋아해서 했었던 그 작업의 시간들은

나에게 의도치 않게 명상의 시간이 되었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조용히 알아차리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고 잘 알아차리며 그로인해 생동감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


손글씨를 쓰며

손그림을 그리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몰입과 인내를 몸으로 체화하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통해

아이가, 그리고 내가 각자의 방향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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