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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훈천 Jul 20. 2024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일자리 안정자금 부활해야

최월급 2,096,270원, 자영업자도 월급받고 일하고 싶어

2025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10,030원으로 결정됐다. 유행어처럼 떠돌던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드디어 현실이 됐다. 황당한 소리로만 들리던 최저임금 1만 원이 마침내 실현되었건만 노동계에서는 비빔밥 한 그릇도 못 사먹는다고 불평이고, 자영업자들은 우리도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한탄한다.


한겨레신문은 최저임금이 1만원을 돌파했지만 물가가 급등해서 비빔밥 한그릇을 사먹기가 어렵게 됐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미지=한겨레신문


임금수준은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금액으로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노동력을 저렴하게 고용하려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들은 사용자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낮게 형성될 소지가 있다. 한마디로 노동착취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은 특히 비숙련 노동자와 취약계층에게 발생하기가 쉽다. 이런 노동착취로부터 저임금노동자를 보호하려는데 최저임금제의 목적이 있다.

2025년 적용 최저임금안 기간급이 올해 대비 170원, 1.7% 인상 금액인 1만 30원으로 결정됐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우리나라는 헌법에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의 근로할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면서 그와 함께 국가의 책무로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을 위한 노력’ 그리고 ‘최저임금제의 시행’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와 ‘고용의 증진’을 ‘적정임금’과 ‘최저임금제’에 앞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에서는 ‘고용의 증진’ 항목은 무시하고 ‘적정임금의 보장’ 만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이 곧 ‘근로자 가구당 적정생계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의 이런 확대해석이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의 최하한선이다. 아무리 노동능력이 없더라도 그 임금 이하로는 일해서도 안 되고 일을 시켜서도 안 되는 최하한선이 최저임금이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마치 근로자 가구의 평균적인 생계비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2025년 적용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안’을 보면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의 이런 착각이 상세히 드러난다. 이 요구안에는 최저임금이 ‘근로자 가구의 적정생계비’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의해서 볼 것은 근로자 개인의 생계비가 아니라 근로자 가구의 생계비라는 것이다. 근로자 한 명의 임금으로 평균 2.39명의 가구원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혼자 벌어 2~3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최저임금이라는 명칭이 무색하지 않은가?



또한, 생계비는 사람마다 씀씀이에 따라 다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발간한 근로자 1인의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하위 10%의 생계비는 120만 원인데 90%의 생계비는 370만 원이다. 한 사람의 생계비가 씀씀이에 따라 250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


비혼 단신근로자의 분위수별 실태생계비 [출처} 최저임금위원회


따라서 최저임금에 참고할 생계비는 최저생계비에서 중위생계비(10~50%) 수준일 것이다. ‘근로자 생계비의 평균’은 사회보장 정책이나 노동정책을 세우는데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최저임금의 결정 자료로 삼는 것은 노동착취를 막고자 하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한다는 규정에 앞서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지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적정한 수준을 넘어선 최저임금은 고용의 감소를 부르며,  생산성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미숙련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일자리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적정임금이란  ‘고용의 증진’을 가져올 수 있는 ‘최저임금’이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적정한 임금은 어떻게 결정돼야 할까?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은 제4조에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ILO 협약은 제131호에서 최저임금 수준 결정에 고려할 요소로 “근로자와 가족들의 필요, 경제발전 필요성 및 높은 고용수준 유지”를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 몇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기준 중위소득”과 최저임금액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수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 혜택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매년 8월에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여 공표한다. 이 기준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교육급여는 50%에 해당할 경우 수급권을 준다.



2024년도 중위소득은 1인 가구의 경우 2,228,445원이고, 2인 가구의 경우 3,682,609원이다. 그런데 이 기준금액은 근로소득만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소득을 모두 포함하며, 자동차와 임차보증금, 금융재산과 같은 모든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서 계산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1인 가구를 기준으로 볼 때 기준 중위소득을 한참 초과했다고 볼 수 있다.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봐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얼마나 높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최근 자료인 2024년 1/4분기 통계 결과를 보면, 가구당(2.26 명)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 8천 원이며, 근로소득은 329만 1천 원으로 조사됐다. 2025년 최저월급이 2,096,270원으로 결정되었으니까 맞벌이 가구의 경우 최저임금만 받는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월평균 가계소득과 가계지출을 모두 한참 웃도는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최저임금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지표로는 ’중위임금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있다. 여기서 중위임금이란 보건복지부 장관이 결정하는 위의 ’기준 중위임금‘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중위임금이란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임금을 가장 낮은 금액부터 가장 높은 금액까지 줄 세웠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임금을 말한다. 



이 비율이 60%를 넘으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용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2019년부터 60%를 넘어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중위임금대비 최저임금 비율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상위권으로 나타나자 노동계에서는 중위임금이 아닌 평균임금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주장한다. 대개 중위임금보다 평균임금이 더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데, 국가통계포털 KOSIS에서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8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00만 7천 원이며,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95만 7천 원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비정규직 평균임금의 107% 수준에 해당하며,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68.3%에 해당한다. 중위임금을 비교 대상으로 했을 때보다 더 높은 결과가 나온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굳이 이런 통계적인 수치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매일 접하는 주변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 벌이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간단하게 확인될 일이다. 현재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들을 모두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근로자로 수용할 수 있다면 최저임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올려도 괜찮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지난 2월 국회에 제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사업소득을 신고한 자영업자는 723만2000명이고 연 소득은 평균 1938만 원으로 나타났다. 7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의 평균소득이 월로 환산하면 161만 원에 불과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친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최저시급으로 비빔밥 한 그릇을 못 사 먹는다“라고 한다면, 자영업자들의 비애는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다.



최저임금제를 비인간적인 노동착취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근로자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제도라는 착각에 빠져있으니 외국인 차별 논란도 생긴다.



최저임금이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임금의 68%, 비정규직 평균임금의 107%에 이르다 보니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든다. 이들을 최저임금 이하로 고용하는 불법 사업장이 생기기 마련이다. 심지어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가사 돌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의 예외를 두자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고용과 임금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 협약마저 어길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높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다 보니 농산물 가격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고공 행진한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아니게 되어버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제가 보호하고자 했던 미숙련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실업과 차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으며, 임금노동자의 대열에 끼지 못해 자영업의 세계로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인건비 지옥이나 고용원 없는 가족 노동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최저시급으로 12,036원이며, 주5일 8시간 근무에 2,096,270원, 여기에 사회보험료 사업자 부담금까지 보탠다면 직원 한 명 고용하기가 호환·마마나 코로나 전염병보다 더 무서울 지경이다.



이에 나는 정부에 '일자리 안정자금'의 부활을 강력히 촉구한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나서 사후 약방문식으로 일자리 안정자금을 만든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부반응이 있었다. 왜냐하면, 일자리안정자금 대신 최저임금인상을 억제하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거스를 수 없게 되었고 자영업자들이 이를 고스란히 감당하다간 말라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자리 안정자금 재도입'은 최저임금위원회  노동계의 공식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과 같은 명칭만 휘황찬란한 정책 대신 당장 일자리 안정자금을 부활하여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를 딛고 생기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주휴수당이라도 폐지해달라는 자영업계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도 힘들다면 지역별 업종별 차등적용이라도 해달라는 하소연마저 깔아 뭉갰다.



저임금 근로자와 취약계층의 생활을 안정시킬 책임은 국가에 있다. 물가폭등과 내수부진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 되어버린 자영업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잔혹하다.



전 세계 최고수준의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장미빛 영광은 정부와 대기업 노조가 챙기고 그 뒷감당은 자영업자들이 지면서 피와 살이 녹아내린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 정부와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고 정든 직원과 이별하지 않으면서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일터에 나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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