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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21. 2024

급성기 병동을 마무리하며

정신과 간호사 일기 

어느덧 정신과 급성기 병동에서 시간을 보낸 지 1년이 되었다. 


처음 급성기 병동에 왔을 때는 워낙 힘들기로 유명한 악명 높은 병동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대학병원만큼 힘드겠냐만은 만성기 병동에서 꿀맛(?)을 맛본 나로서는 온갖 걱정이 먼저 앞섰다. 

게다가 앞으로 해야 하는 정신건강간호사 수련을 앞두고 있었는데 1년 동안은 나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한 전 기수 선임들의 조언이 앞서 생각나 '나는 망했다' 생각 그 자체였다. 


첫 한두 달 동안은 비교적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괜한 걱정이었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수련 생활에서도 특별한 게 없었고 급성기 병동도 나름 조용했다. 하지만 이후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병동에 입원하자마자 "강제 입원을 시켜? 너네가 뭔데!!!!! 으아아악!!!"이라고 소리치며 보호실 문을 걷어차고 온갖 난리를 치고 근무자들에게 쌍욕을 하고 폭행을 시도하는 보호입원(전문의 진단을 통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이나 입원치료를 거부할 때 보호의무자 2명의 신청으로 진행) 혹은 응급입원(정신질환 추정자가 자, 타해 위험이 클 경우 의사, 경찰관 동의를 받아 입원) 환자.

 자살 시도를 하다 신고를 받고 입원하여 근무자가 보지 않을 때마다 자해시도를 하는 환자.(물론 위해도구를 입원 시 다 수거해 가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근무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양극성정동장애(쉽게 말해 조울증) 진단으로 격앙된 행동으로 툭하면 타 환자에게 쌍욕을 하고 사소한 행동에도 주먹이 먼저 나가며 근무자가 다가가면 더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환자.

마약 중독으로 입원하자마자 기면증 환자처럼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이야기하며 환촉을 느껴 몸을 박박 긁는 환자.

환청에 반응하여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고 망상 호소를 하며 근무자가 내 남편이라거나 삼성 부회장이 내 남편이다라고 소리치며 남편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너네가 뭔데 나를 붙잡아두냐 난리 치는 조현병 환자.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입원한 살인, 방화, 절도 등을 저지른 범죄자이자 환자.


병동물품, 환경도 성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 


보호실 문짝을 하도 발로 세게 걷어차서 문이 휘거나 손잡이가 부러져 열리지 않아 수리를 맡긴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증상으로 인해 인지가 떨어진 환자가 옷을 벗고 자신의 병실을 찾아가지 못하고 다른 환자 병실을 마구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자신의 것이라며 당당하게 가져가기도 했는데, 그 환자는 갑자기 샤워실로 들어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샤워기를 거울에 세게 내던져 유리가 산산조각 나기도 해서 샤워실을 폐쇄한 적도 있었다. 짐을 정리하라고 준 플라스틱 바구니를 아침 일찍부터 벽에 세게 쳐서 여러 조각으로 분리가 되었으며 공동 물품이라고 내놓은 손소독제를 치아나 얼굴에 발라 싹 다 수거하였으며 공동 물품인 바셀린을 먹으려고 하여 회수하고 필요시에만 소량 나누어준 적도 여럿 있었다. 


환자들의 싸움을 막는 것이 일상이었고 어떤 환자가 올 지 몰라 출근 전마다 긴장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이 맞나? 의심을 끊임없이 했다. 


증상으로 인해 옷을 홀딱 벗어 환의복을 입히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기도 했고, 헨젤과 그레텔처럼 대변을 지려 온 복도 바닥에 경로를 표시하여 대걸레로 따라다니며 닦기도 했고, 배식을 하는데 국을 이따구로 밖에 못주냐며 욕을 먹기도 했고, 환의복에 소변을 다 묻혀 씻기기도 했으며 제발 수액을 놔야 한다고, 혹은 피검사가 있는데 한 번만 찌르게 해 달라며 환자에게 애걸복걸하며 처치를 했고, 다리 골절로 깁스를 했는데 불편하다며 계속해서 빼고 뛰어다녀 제발 좀 푸르지 말고 뛰어다니면 수술해야 한다고 빌기도 했고, 환자들이 사소한 걸로 쥐어뜯고 싸워 말리기도 했고... 등등 정말 많은 짓을 하며 나는 간호사인가 무엇인가 회의감이 든 적도 정말 많았다. 


그러한 와중에 정신건강간호사 수련을 하여 일을 가기 전이나 일이 끝나고 나서 수업, 실습, 과제 등을 하느라 평균 수면시간이 3~4시간에 이른 달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 예민함이 끝을 달렸고 차에서 잠깐 1~2시간 쪽잠을 자는데 이게 뭘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피로해졌고 툭하면 화가 났다. 이러다가 내가 이곳에 입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근무자들로부터 'OO선생님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온순했는데 이젠 성질도 부린다?'라며 놀림을 받았는데 그때 내가 많이 예민해졌구나를 스스로 느끼고 반성하기도 했다. 


증상으로 인해 인지가 떨어져 모든 물건을 내던지고 병동 환경을 훼손시키며 타 환자들을 계속해서 자극하여 타 환자를 때린 한 환자가 있었는데 주치의의 진단 하에 격리와 주사제 처치를 했다. 이후에 타 환자의 말에 의해 그 환자가 병실 안에서 타 환자를 계속 자극하여 다른 환자에게 발로 맞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환자의 상태를 다시 보았고 겉으로 봤을 때 상처나 증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치의에게 바로 이를 알려 주치의가 직접 보고 나서 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냐 하여 후송을 보낸 적이 있다. 후송을 보내며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고 그 보호자는 그동안 근무자는 무얼 했느냐며 격분하였고 cctv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나는 쉬는 날에도 병동에서 계속해서 연락이 왔고 당시 상황을 여러 번 재연하며 설명했다. 병실에는 cctv가 없으며 병실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우리가 환자를 1:1로 보는 상황도 아니고 어떻게 바로바로 모든 것을 다 아느냐, 나는 해당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노티를 하고 이에 대한 처치를 했다며 억울해했으나 이를 이해해 줄 일이 없는 간호부나 병원장은 우리 병동에 와서 계속해서 나와 그때 같이 일을 했던 근무자를 계속해서 추궁하였다. 다행히도 환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진단받고 나서 일은 일단락 끝이 났다. 나는 이에 한시름 걱정을 덜었으나 이로 인해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아,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간호부든 병원이든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구나.'라며 집에 가는 길에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기도 했다.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짧은 시간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살면서 겪을 일이 없는 일도 꽤나 겪은 것 같다. 현재는 급성기 병동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만성기 병동으로 부서이동이 되었고 어느덧 정신건강간호사 수련생활을 마치는 과정에 놓여 있는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처음 나는 정신과 병동이 아닌 혈액종양내과 병동에 일을 하면서 나 같은 사람은 간호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백의 천사? 봉사심?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저 그날의 일을 급급하게 끝내며 선임에게 혼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미처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끄러웠다. 간호사인데 환자보다 내 일을 끝내는 게 먼저다라니. 그로 인해 나는 병원에 사직서를 냈고 다시는 임상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학부시절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정신과를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비교적 환자를 상대할 시간이 많았기에 나는 환자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신과에 대해 더욱 깊이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어느덧 3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월급은 타 과의 (조금 과장 보태서) 절반에 미치었고 병원은 처우가 좋지 않았다. 설날, 추석과 같은 연휴에 어느 회사에도 기본적으로 주는 떡값하나 나오지 않았고 잠잠했으며 근무자가 부족해 16시간 이상 일도 했으며 병동마다 업무 강도가 현저히 차이나 아무리 위에다가 시정해 달라고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모습. 이에 근무자들이 줄줄이 사직을 해도 병원은 '뭐, 너네가 나가면 새로운 간호사로 채우면 되니깐'하는 마인드로 운영을 하였다. 또한 수련생활을 하며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정신과는 미래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고 크게 상심을 했다. 정말로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1년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지금이라도 정신과를 그만두어야 하나? 미래가 없는 정신과. 미래가 없는 병원. 지금이라도 나도 미국간호사를 준비해야 하나? 하지만 그게 쉽나? 그 과정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데.' 지금까지 방황을 하다 이제 겨우 정신과로 정착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말 정신과에 발을 드리니 내가 제대로 된 길을 선택했는지 의문이 드는 아득한 미래가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글을 쓰다 보니 길어졌다.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웃으며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나름 성장한 것 같다로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글을 쓰며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니 오히려 착잡해지고 암울한 미래를 품은 채 끝을 내는 것 같아 다소 찝찝하다. 하지만 근 3년간 정신과에서 일을 해본 근무자로서는 내가 생각하는 미래와 현실의 괴리감만 느낄 뿐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고 있는 정신과의 밝은 미래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르침을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네가 좋지 않은 단면만 보고 있는 것이라고 누가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정말로 우리나라의 정신과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고 정신질환을 가진 많은 환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고 사회에 적응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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