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간호사의 하루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한 나는 한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정신건강간호사로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와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 중 중증 정신질환(조현병, 조울증, 중증 우울증 등)을 진단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계해 주거나, 주기적으로 증상 혹은 약물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와 같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일반 간호사들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보던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너무 오랜 기간 질환을 앓고 기능도 현저히 떨어졌고, 사회로 나아가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한 분들이 계시기도 했고, 진단을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정신과 약을 먹고 증상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자의적으로 약을 끊은 후 재발하여 심각한 상태가 된 분들 등 다양한 케이스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사회로 나와계신 분들은 말을 하기 전에는 정신과적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은 분들이 계셨고, 과연 이분이 간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며 의구심이 들게 하던 분들도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해내시기도 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병원에 계신 분들을 간호하는 것이 더욱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였다. 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들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일단 병원 내에 계신다. 내가 원하면 가서 모니터링을 편하게 할 수 있고, 그들의 증상이 두드러지게 보일 때에는 즉각적으로 주치의에게 노티를 하든, 처치를 하든 등을 하며 해결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우리 정신건강복지센터 같은 경우에는 내가 스스로 중증도에 따라 주 1회를 보거나, 월 1회를 보며 대상자 모니터링이 이루어진다. 내가 보기엔 이 분은 집중적으로 봐야 하는 분인데, 상당히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며 면담을 거부하거나, 알코올을 다시 마시며 부재중 상태에 빠져 연락이 두절되거나, 나는 더욱 자주 보며 이분을 모니터링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우리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상자는 나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면담을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계해 주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키트를 주거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들은 도저히 나의 마음을 모른 채로 방어적이고 부담스러워하며, 이러한 면담이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낸다.
나 같아도 낯선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나의 마음 저 깊숙하게 꽁꽁 숨겨둔 상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으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알지만 우리는 그들과 라포(상호신뢰관계)가 형성이 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들과 허심탄회한 면담이 이루어지고 싶어도, 우리는 매번 실적을 내야 하는 일꾼일 뿐이며, 소득 없이 돌아갈 때에는 위로부터 온갖 압박과 비난만이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답답한 심정일뿐이다.
"저 선생님이 저한테 이렇게 연락하는 거 너무 부담스러워요. 전 우울증을 10년 넘게 겪었어요. 약을 먹어도, 아무리 이런 기관에 얘기를 해도, 주치의와 면담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구요. 너무 지쳐요. 제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 또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계속 저보고 잘 지내냐, 자살 생각은 없냐, 우울감은 어떻냐 이러는 거. 솔직히 도움이나 되겠어요? 전 그냥 제 문제만 해결되면 우울감도 줄어들 텐데 말이죠."
최근에 내 대상자에게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그 대상자는 우울감 수치도 높았고, 예전 자해 시도를 한 과거력이 있으며, 나와 면담 초기 때에는 'OO대교에서 뛰어내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도 했을 만큼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나는 내 대상자를 그냥 둘 수 없었다. 매주 불편하더라도 연락하며 대상자의 안부를 물었고, 오늘의 기분은 어땠는지, 문제는 잘 해결되고 있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 자해한 적은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내 나름의 최선이었다. 불안정한 상태로부터 대상자를 지키기 위한.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온갖 허무함을 느꼈다. 내가 하는 노력들은 무엇인 지 모르겠다. 정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감이 심각한 대상자에게 해주는 기본적인 프로그램 8회기가 있다. 인지재활을 통한 부정적인 생각 바꾸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회복탄력성 등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만약 내가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좋은 프로그램을 한다 한들 내용이 마음속에 들어올까?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가 되는 게 맞지 않나?라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원래 초반에 담당자가 변경되면 그렇다고는 하지만, 다시 알코올로 인해 부재상태에 연락 두절되고 열심히 유지하고 있던 단주기간도 와장창 무너지고 다시 망가지는 삶을 사는 대상자, 내 연락을 몇 개월 째 이유 없이 피하고 있는 대상자, 냉소적인 태도로 나의 면담을 무시하는 대상자, 주치의에게 대상자의 정확한 증상 보고를 위해 분명 함께 외래동행을 가자고 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멋대로 진료를 받아버린 대상자, 치료비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필요가 없다며 끊어버리는 대상자 등 통제 불가능한 대상자들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데 어마어마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없는 것도 많았고, 면담을 하면서도 '내가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지역사회로 나와보니 정말 나름 좋은 조건을 가지며 사는 데도 우울증을 가진 대상자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정신질환을 가지며 일도 그만두고 급여 대상자로 수급비를 받으나 매일을 희망차게 사는 대상자 등 정말 대조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신질환의 유무를 떠나 그 나이대라면 가지는 고민들을 정말 다들 똑같이 같고 있었다. 똑같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음에도 병식이 없어 '이것만 해결되면 내 병도 나을 거예요'하는 모습, 혹은 '저는 조울증이 있는데, 이건 이러이러한 질환이잖아요? 저는 제 질병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읽어봤어요.'라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많고, 그들을 붙잡아둘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도 많기에 나는 허무함을 느끼고 좌절한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정신질환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하루하루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해 눈에 띄게는 아니지만 조금씩 노력하는 대상자를 보며 힘을 얻는다.
어떤 대상자는 처음에 우울수치가 높고, 면담 중간에 공황증세로 인해 면담을 멈춘 적이 있었다. 다소 방어적인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그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하고, 자신의 공황증상을 낫게 하기 위해 내가 제안한 방법들을 수용하고, 다양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노력하는 대상자도 있었다.
어떤 일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병원에서 정신과 간호사로 환자를 위해 일해 보기도 했고, 지역사회로 나와 대상자들을 위해 일해 보기도 했다. 그 어떠한 일이든 누군가를 상대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지역사회에 정신건강복지센터란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찾아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