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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Feb 06. 202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교훈

하루 종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 후, 그가 나에게 물어 온다.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


나는 이 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존재도 모를, 3층의 어떤 구석진 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대답한다.


지도를 들고 이리 저리 다니던 우리는 길을 잘 못 들어 그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방은 한 마디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미술작품들이 무더기로, 촘촘하고도 빽빽하게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작품들이 네모난 방의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는 반면에, 이 방에 있는 작품들은 마치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존재했다. 방 안에는 수 없이 많은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들 안에 결이 비슷한 작품들끼리 번호를 매겨 가까이 진열해놓은, 창고와도 같은 방인 것이다.


그와 나는 길을 잘못 들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둘다 느긋한 성격인 탓에 올라온 김에 뭐가 있나 한 바퀴 돌아보기라도 하자라는 식으로 기둥 사이를 슬렁슬렁 걷기 시작했다. 재미난 포즈를 하고 있는 조각상 앞에서는 똑같은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며 깔깔대는 우리였다.


문득 우리는 이 창고 방에 모여 있는 작품들과 아래층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의 차이가 무얼까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창고 방에 있던 충분히 훌륭한(well-crafted) 조각 앞에 서 있자니, 그것을 조각한 사람의 인생이 그려졌다. 저 조각을 하기 위해서 그가 보낸 인생과 그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휘리릭 눈앞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의 노력과 재능이 저 아래층의 어떤 조각가의 그것보다 열등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이 곳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어서, 더 뛰어나고 덜 뛰어난 작품들 사이의 차이를 모르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노력과 재능이 저 아래층 조각가의 그것보다 열등했다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우리의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소위 말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한 끗 차이로 그 성공을 거머쥐지 못한 사람들의 노력과 재능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우리의 능력 영역 밖의 요소들로 인해 그 차이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운이 좋다거나, 적절한 시기에 귀인을 만난다거나 하는 능력 밖의 일들 말이다.


갑자기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유명한 예술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crafted) 풍자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예술이 유명해지기 위해서 즉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서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풍자했는데, 내가 craft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craft의 사전적 정의(출처: Cambridge Dictionary)는 '숙련된 방식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to make objects, especially in a skilled way)'이다.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손에서 창작되는 것도 craft지만, 그 예술작품이 유명해지고 대중에게 소비되게끔 만드는 과정도 craft이다. 모던 아트는 전자에 그 무게가, 포스트모던 아트는 그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뿐이다. 모던 아트에서는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예술가가 뛰어난 예술가였다면, 포스트모던에서는 메세지를 던지는 행위를 잘 하는 예술가가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워홀, 뒤샹, 뱅크시 등)


결국 창고 방에 보관된 작품들의 예술가들은 후자의 craft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들을 유명한 예술가로 만들어 줄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없었거나, 좋은 PR 담당자가 없었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어그로를 못 끌었다는 것쯤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대 사람들의 입에 좀 덜 오르내리게 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이 저 아래층의 방 한가운데에 놓여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은 실패한 삶일까? 아니다. 그들이 조각을 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들에 행복했다면 그들의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닐까?


그와 나는 이 논의 끝에 결론을 내린다. 뭐가 어찌 되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게 최고다. 그거면 된거다. 그렇게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며 손을 꼭 잡고 계단을 내려온다.




(p.s. 커버 사진은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만 전시되는 트리이다. 트리는 플래시 세례를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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