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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기 Sep 19. 2022

영원한 휴가

안진균 개인전

전시장에서 처음 보이는 작업은 12개의 ‘영원한 미소들’ 시리즈이다. 디지털 프린트 사진 작업을 mdf와 각재를 사용하여 프레임을 제작하고, 바닥에 내려놓은 전시 방식을 보인다. 프린트된 사진은 배양토를 이용하여 가린다. 웃는 입을 기준으로 좌우를 평행하게 배양토를 치워, 웃는 입을 가로지르는 긴 틈새 만이 보인다.


이어지는 작업으로 ‘영원한 다리들’이 등장한다. 기념사진에서 주로 보이는 전신 비율로 찍힌 군상의 사진을 뒤집어,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을 기준으로 아래에 있는 모든 사진 정보(대상의 얼굴, 기념하고자 했던 배경)를, 진을 지탱하는 좌대이면서 프레임이기도 한 나무 판재를 통해 가린다. 나무는 호두나무 무늬목을 사용했으며, 바닥과 사진을 연결한다. 사진을 지탱하기 위해 프린트에 알루미늄을 덧대었다. 


작가의 가족사진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한 공간에서 하나의 방법론으로 편집된 사진으로 인해, 사진 자체의 이미지보다는 사진이 어떤 형식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는지, 즉 디스플레이 방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원한 미소들’에서는 배양토로 가득 차 있는 전시장에 들어가는 느낌, 이후에 프레임 속 이미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원한 다리들’에서는 손바닥만 한 사진들을 지탱하는 월넛 좌대(겸 프레임)이 비석 혹은 기념비처럼 보이며, 비석들 가운데로 물결처럼 휘어진 동선을 통해 산책하듯 걸은 이후에 가볍게 사진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사진이 단순히 대상의 재현을 위한 매체, 혹은 평면적이라는 매체 특정성을 벗어나 확장되게 만든다. 사진이 아닌 조형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사진은 재현의 순간을 상상하게 하는 역할을 잃어버린다. 이를 통해 가족사진이라는 표상하던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잃어버린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가족의 시간을 편집하는 가족사진의 역할을 박탈당한다. 그렇게 가족의 의미를 편집하던 가족사진은 작가에 의해 편집당하여, 조형물의 물성이 주는 부담스러운 부피감을 얻게 된다. 이 부담스러움은 작가의 방법론에 의해 편집된, 일관되게 드러나는 이미지(웃는 입들과 다리들)의 반복과 더해져, 관람객으로 하여금 가족사진이 편집한 기억에 대한 거부감을 조성한다.


작가는 사진을 확장과 동시에 훼손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진이라는 고정성과 재현성을 없애기 위해 작가는 사진에 부수적인 행위를 가하는데, 이는 매우 조심스러워 보인다. 사진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것이 아닌, 월넛이라는 단단하고, 보존성이 좋은 자재를 사용하고, 배양토라는 따듯하고, 생명력을 품은 듯한 소재를 통해 물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배려는 사진 형식을 확장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훼손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심스러운(어쩌면 제의적으로 보이는) 행위와, 제목 <영원한 휴가>을 보면, 이러한 확장에서 비꼼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진이 편집하는 기억, 재현성에 대한 비꼼이 아니다. 해고가 아닌 은퇴임을 알 수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고정성에 대한 배제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보완을 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은퇴라는 새로운 장의 진입처럼.


오히려 배제는 사진의 형식에서 드러난다. 매체의 고정성은 자신이 조심스럽게 확장한 프레임을 통해 바꿔나가지만, 사진의 형식은 과감하게 삭제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한 가지 방식으로 편집된 12개의 이미지(영원한 미소들), 다수의 이미지(영원한 다리들)은 고정된 형식이 주는 압도와 강요를 보여준다. 가족사진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 드러나는 고정된 형식(고정된 순간)은 ‘작가에게 가족은 어때야 한다.’는 강요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이다. 작가는 이를 같은 방식으로 부각해 비꼰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가족사진을 직접적으로 훼손하진 않은 모습을 통해, 이 역시 가족사진에 대한 배제보다는, 가족사진이 편집하는 행복 이외의 가족에 대한 기억에 대한 향수로 시작하여, 가족사진의 고정된 형식과 그것의 메타포를 해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나는 작가가 꽤 서정적인 인물일 것이라 상상된다. 매체의 고정성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매체를 소중히 하는 모습, 가족사진의 고정된 형식에 불만은 있지만, 가족사진 자체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났다고 보인다.

영원한 미소들


영원한 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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