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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06. 2024

치과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임플란트가 준 교훈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 이라는 말이 있다.

칠 남매 중 막내라 유독 치아가 약한 건가? 조상 탓을 해보지만 부질없다.

충치가 유전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건치는 분명히 타고 난다. (부러워라!)

치아 관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이 대표적인 예다.

치과에 갈 때 마다 양치질도 신경 쓰고 치과 검진도 철저한데도 늘 탈이 난다며 억울해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선천적으로 잇몸이 약한 것 같단다.

지금까지 충치 치료부터 잇몸 수술, 발치, 크라운, 임플란트까지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치과에 갖다 바친 돈만도 거짓말 조금 보태면 수억이었다. 게다가  고통과 눈물 값까지 보태면은. 값을 매기기도 어렵다. 

건치가 오복 중의 하나라는 말에 이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날도 치과를 갔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젤리를 먹다가 임플란트 윗부분이 빠져버렸다. 

끈적하거나 딱딱한 것은 조심하라 했는데 깜빡 잊고 사고를 치고 말았다. 늘 먹는 것엔 정말 진심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했던가?  정말이었다.

급한 마음에 당장 치과에 전화 예약을 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한낮에 일터를 벗어났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다녔어도 치과는 늘 용기가 필요했다.

더구나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치과를 가지 못할 수만 가지 이유를 떠올리며 치과에 도착했다.     



 어라? 모두 낯선 얼굴들이다

사실 낯가림이 좀 있는데 어쩌지? 하는데, 내 이름이 불린다. 다행스럽게도 의사도 담당 치위생사도 친절했다.  

휴! 일단 안심이다.

탈락한 임플란트 뚜껑을 접착제로 붙이고, 불편했던 치아를 검사했다. 

어떻게 나쁜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는지....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시술해야 한단다. 흑!  

다시 또 휴가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당장 시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솔직히 아픈 것 보다 그날을 기다리며 불안해 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미리 다짐을 했어도 마취 주사는 늘 긴장되고 무서웠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마취 주사 전에 “ 최대한 안 아프게 천천히 할게요.”라는 부드러운 의사 말에 안심했다.

 의사는 미리 주사 부위를 알려 주었는데 예상하지 못하는 불안보다 그 편이 훨씬 좋았다.

어른들도 칭찬과 격려는 꼭 필요한 법이다. 

고통을 공감해 주는 위로와 잘 참고 있다는 격려 덕분에 끝까지 참을 수 있었다. 

물론 치과 의사도 훈남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다니 주책바가지)치과에 2시 30분에 들어가서 5시가 되어서야 풀려났다 역시나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늘 아픔은 상상 이상이었다.

고통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온몸이 후들거리고, 마취 때문에 발음도 어눌해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예상을 훌쩍 넘는 금액에 카드 한도 초과로 일부만 결제했다. 영혼도 지갑도 탈탈 털린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흑!





 집에 오자마자 죽 몇 숟갈과 소염제를 먹고 침대로 쓰러졌다. 이대로 아침까지 잠들었으면 싶었다.

어지러운 꿈속에서 헤매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그냥 조용히 두었으면 좋았을 걸 창문을 열고 선풍기 방향을 조절한다며 법석을 떨었다. 거참! 좀!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지만, 눈만 말똥거렸다. 진통 효과가 떨어졌는지 잇몸까지 욱신거렸다.

그 밤은 그렇게 길고 아팠다. 

    


 

이 주일 후,

가기 싫다며 엉덩이를 빼다가 겨우 치과에 도착했다.

병원을 들어서자 치료하는 기계음이 고막을 괴롭혔다.

그 소리만으로도 이미 온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치과는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아주 오래전 단골이 돼버렸다.

제집 들나들듯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늘 절망했었다.


충치에 대한 나쁜 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불안과 공포로 소리 지르며 울던 나를 억지로 눕혀서 이를 뺐다. (고통 시간을 최대한 짧게 끝내고자 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가 뽑히는 통증보다 꼼짝 못 하는 분위기가 무서워서 오래도록 목 놓아 울었다.

어른이 되었어도 치과는 늘 두렵다.

무서웠던 시간을 견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치료 중 견뎌낸 고통을 꼭 기억하자, 다짐했다. 

고통이나 시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아픈 것은 무조건 싫다며 도리질했다. 끙!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긴 시간이 지나고(3개월 남짓 걸렸다. 예전에는 6개월도 걸렸었다)  지난주에 임플란트를 끝냈다. 휴!

거울을 보며 반짝반짝 빛나는 앞니를 들여다보니 그동안의 고통을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다.

임플란트 사용기한은 관리 하기에 달려있다고 했다.

당연히 잘 관리해야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반복 되어 질 고통이었다. 

 

임플란트가 가르쳐준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내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반란은 나의 무심함에서 비롯되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무관심이 통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부터라도  당연한 것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정성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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