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야기
학원에서 학생들과 수업할 때 자주 날씨를 물었다. 출퇴근을 차로하고, 점심은 집에서 먹고 오며, 커피는 사서 오니 날씨를 알 턱이 없다. 내가 주로 있는 공간에는 창문이 없고 학생들 오고 가는 것을 보기 편하게 하기 위해 강화 유리로 둘러 싸여있다. 정면에는 게시판이, 고개를 돌리면 학원 출입구가 보인다. 계절 감각이라곤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공간에 있는 것이다.
내가 날씨를 자주 묻는 이유는 아이들이 계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기도 하다. 일 년, 열두 달을 보내다 보면 같은 날씨는 하나도 없다. 미세하게 다르다. 절기가 바뀌기 시작하면 조금 더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계절을 느끼려면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걷다가 보이는 나무가, 꽃이, 사람들의 옷차림이, 곤충들을 둘러보지 않으면 계절을 느낄 수 없다. 아이들에게 날씨를 묻고 이어 “이제 진짜 가을이네”라고 말하면 그냥 웃는다.
나도 그랬지. 어느 순간부터 계절이 바뀌는 것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계절에 관심보다는 하루하루 내가 읽어나가야 할 글과 기사를 소비하기 바빴다. 아이들도 해야 할 공부와 게임들 때문이겠지. 다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육아를 하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더 하루를, 한 달을 변화하는 계절을 느껴보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여느 때 처럼 산책을 나선다. 목적지는 집 근처 카페. 길을 걸으며 어제 본 나무의 색깔이 더 짙어짐을 느낀다.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하나 주워 아이에게 건넨다.
아이는 햇빛에 잘 마른 단풍잎을 쥐고 손으로 부셔본다. 바사삭. 덜 마른 낙엽을 바닥에 주워 부셔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아 손으로 찢는다. “이건 찢어야 돼” 길을 걸으며 가을을 관찰한다.
그러다 떨어지는 낙엽을 발견한다. 한참을 나무에서 낙엽 떨어지는 걸 기다리다 잠자리 한 마리가 지나가니 “잠자리다!” 라고 외친다. 길을 걸으며 가을을 생중계한다. 아이는 바닥에 낙엽을 줍더니 갑자기 자세를 취한다.
“아빠 찍어!”
“아.. 어.. 찰칵”
사진 한 장 찍고는 갈 길을 간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이 넘게 걸려 카페에 도착했다. 아이와 낙엽을 밟고, 던지고, 느끼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아이에게 “이건 낙엽이야, 이건 잠자리야, 이건 …” 내가 가르쳐 줬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아이에게 계절을 배웠다.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 앨범에도 가을처럼 알록달록이다. 이제는 아빠가 가르쳐 줄 것보다 아이에게 배울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아이에게서 하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유독 커피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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