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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북 Aug 29. 2024

진정한 친구를 얻기 위한 자격

친구랑 여행가서 손절도 한다면서요?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으레 말하듯이,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깨달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전까지 나에게 친구는 뭐든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사귀어보면서 나랑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오히려 다른 면으로부터 매력을 느끼고 서로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음을 배웠다. 이 깨달음을 준 건, 중학교 때부터 내 흑역사를 지켜보고 단점까지 알면서도 생일편지에 '널 항상 응원할게'라고 써준 한 A라는 친구이다. A와 있을 때 항상 푸하하 웃고, 떠들썩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편한 친구였다. 


어느덧 둘 다 어른도 되었겠다, 모은 돈으로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왕 가는 김에, 시간 많은 대학생이라는 장점을 살려 호주로 8박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준비부터 모든 것이 나름 순조로웠지만, 문제는 가서 터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속이 터졌다. 친구는 정말 꼼꼼한 성격이다. 그리고 느긋한 편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휴지로 닦은 후 붙은 휴지 조각들을 하나씩 떼는 모습에, 일찍 일어나서 오페라 하우스 한 번이라도 더 걷고 싶은 나는 속이 탔다. (그 외에도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우산깃을 펴서 접고 있는다거나..)


결국 마지막 날에는 속병이 나서 각자 하루를 보내길 제안했다. 

그냥 우리 엄마처럼 '빨리 좀 해.'라고 말하면 될 것을, 왜인지 친구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 같아 입을 떼기 어려웠다. 그리고 성격 차이인 부분도 있고 말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싶어서 말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말하기엔 상황도 애매했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 한편에 깊게 묻어둔 채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사실 말할 수 없었다는 건 핑계다. 그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말을 안 하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때로는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못해 친구가 의아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 점은 미안하다) 호주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 생각했다. 오래 봐온 만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닌 걸까?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와도 틀어지는 일이 다반사인데, 나랑 꼭 맞는 친구 찾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니 맞춰가야 한다. 친구에게 신경 써주면 좋겠다는 부분, 최소한 나의 감정이라도 전달해야 속이라도 시원하다. 매번 첫사랑 같은 친구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이미 있는 친구와 맞춰갈 노력도 하기 싫다면, 나야말로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같이 밥을 먹다가 그 얘기가 나오면 슬쩍 자연스럽게 말이나 해볼까 싶다. 

그래야 졸업여행도 같이 갈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부족한 나지만 여행 즐거웠다고 말해준 친구에게 고맙다.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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