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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소한 달달구리 여행기, 달콤한 붕어 싸만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단팥 앙꼬가 일품인 Binggrae Samanco~

붕어싸만코의 영어명은 SAMANCO다. 그리고 하와이의 햇볕은 하얗던 나의 손도 옅은 팥죽색으로 태닝 해줬다. 

하와이 주립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의 북스토어 (Bookstore) 계산대 근처에는 한국에서 슈퍼나 동네 마트, 혹은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있다. 물건을 계산하려면 적잖이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지날 때마다 항상 하나를 사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달달구리를 사랑하는 필자에겐 이 찰나의 순간이 백만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한쪽에선 천사가 '너 지금 갈증 나는 거 같으니 그냥 시원한 물을 마시렴! 너 다이어트한다며!'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선 악마가 '한번 먹는다고 살 찌니? 그냥 시원한 달달구리 먹고 기분전환해!'라며 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은 천사가 이겨서 시원한 달달구리의 유혹은 물리칠 수 있었다. 나의 다이어트 의지가 강하다기 보단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원생에겐 하와이의 높은 물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아울러 북스토어에는 미술 재료 사러 자주 갔던 곳이다. 달달구리를 먹으려고 해도 '이 돈이면 물감 하나를 더 살 수 있을 텐데, ' 혹은 '붓이 다 떨어져 가는데 붓을 사야지 무슨 군것질이야'란 생각이 먼저 들어 시원한 달달구리는 항상 '다음'에 먹기로 미뤄졌다. 미술 재료를 먼저 사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미술에 재능이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전공은 기가 막히게 잘 선택했다. 


중요한 페이퍼를 제출한 어느 날,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 당장 북스토어의 달달구리 냉동고로 달려갔다. 빨리 먹고 싶은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살펴보니 놀랄 노 자였다! 여러 하와이 로컬 아이스크림들과 미국 아이스크림들 사이에 붕어싸만코와 메로나가 당당히 있는 것이 아닌가! 메로나는 이미 외국에서 인기 많은 한국 아이스크림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어 기사 속의 현실을 직접 마주한 느낌이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K-아이스크림이 자랑스러웠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단팥 앙꼬가 있는 오리지널 붕어싸만코와 딸기 아이스크림과 딸기 시럽이 들어가 있는 붕어싸만코 딸기가 있었다. 딸기 버전은 한국에 있을 때 본 기억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 없는 기간에 새로 생긴 맛 같았다. 배가 제철인 계절이 되면 알라모아나에 있는 돈키호테, 월마트, 타겟에 거의 바로 농협 배가 들어올 정도로 한국의 제철 과일들이나 새로운 음식 혹은 달달구리들이 거의 바로 호놀룰루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위와 같이 추측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메로나와 붕어싸만코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 오리지널 붕어싸만코를 골랐다. 이유는 단순하다. 먹고 싶었던 붕어빵이 닮아서였다. 

딸기 vs 오리지널, 당신의 선택은?

북스토어 위에 있던 캠퍼스 센터 (Campus Center)에 스타벅스 로고가 있고 그 앞에 벤치들이 있었다. 적당히 그늘져서 시원한 하와이 바람을 만끽하며 페이퍼를 쓸 수 있었다. 하와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어 참 좋아했던 장소였다. 스타벅스 로고 앞 벤치에 앉아 하와이의 바람을 느끼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붕어싸만코를 먹으니 갑자기 한국으로 가고 싶어졌다. 석사 3년 과정이 끝날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와서 그런가, 한국이 참 그리워졌다. 하와이 바람을 즐기며 붕어싸만코를 먹고 있자니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향수병이 달래지는 것 만 같았다. 


붕어싸만코를 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 벤치에 앉아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요즘도 동네 슈퍼를 가서 얼음 달달구리들이 있는 냉동고에 자리 잡고 있는 붕어싸만코를 보면 열심히 공부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종종 붕어싸만코를 사 먹으며 난 과연 그때보다 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잘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보통의, 하지만 치열했던 나날들 속의 작은 천국을 선사했던 붕어싸만코가 어느 순간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달달구리로 내 곁에 있다. 나와 같이 멋지게 살아보자, Sam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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