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인터넷 뱅크인 누뱅크가 지난해 12월 9일 뉴욕 증시에 티커네임 NU로 상장했다. 누뱅크는 IPO를 통해 $26B를 조달하였고, 이는 2021년에 5번째로 큰 IPO라고 한다. 누뱅크의 IPO에는 소프트뱅크, 유명 VC인 세퀘이어 캐피탈, 워렌버핏의 버크셔 해셔웨이, 탑티어 헤지펀드인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가 참여하면서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널린 것이 핀테크인데, 누뱅크가 어떤 특이점이 있기에 유명 투자사들이 뛰어든 건지 알아보자.
남미의 특수성
사실 누뱅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기존의 로빈후드 마켓(HOOD), 소파이(SOFI)보다 혁신적이지 않다. 오히려 주식시장의 쉬운 접근에 지대한 공을 세운 로빈후드나 스탠포드 졸업생이 재학생에게 낮은 금리의 학자금 대출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글로벌 핀테크의 포문을 연 소파이가 오히려 훨씬 더 신선하다고 본다. 하지만 혁신을 제하고도 누뱅크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누뱅크가 남미를 타깃으로 하는 인터넷 뱅크이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남미 사람들의 인구 비율은 평균적으로 45.6%이다. 브라질은 30% 이지만 0-10%를 기록하는 선진국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브라질의 은행 계좌 개설 비율이 이렇게 낮은 주된 이유는 은행 문턱이 서민들에게 너무 높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은 300% 이상이고, 브라질 헤알화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10.75%라는 고금리를 대출 마진으로 요한다.
또한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칠레 등의 남미 국가 은행 지부는 상당히 부족하다. 일본과 독일의 은행 거리는 약 6km이고 미국은 영토가 넓어서 거리 수치가 편향된 감이 있는데, 일본 정도의 스케일로 축소하면 미국도 평균을 살짝 상회하는 수치를 보인다.
반면에 브라질은 470km으로 콜롬비아, 멕시코, 칠레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남미의 은행 지부는 60%가량이 수도권에 분포되어있어, 지방 사람들은 오프라인 계좌 개설이 거의 불가능하다.
방만한 브라질 은행 생태계
브라질은 남미 최대 경제국으로 브라질 금융권은 6개의 금융사가 파이를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 6개 은행은 브라질 금융자산의 81%와 전체 대출의 81%를 독점하고 있다. 은행들은 경쟁에 의한 상승 여력을 잃었다. 그들은 경쟁하지 않고 담합하여 방만한 경영을 펼치고, 예대 수수료를 마음대로 부과하며, 그들이 원하는 고객에게만 대출을 해준다.
남미의 이런 카오스 속에서 누뱅크가 등장하였다. 누뱅크는 사업 초기, 연회비가 없는 보라색 신용카드를 발급하여 고객들을 유치했으며, 현재는 기본적인 예금 계좌 개설 및 보험, 환전, 중소기업 대출 등을 하며 제도권 은행의 형태를 갖췄다.
누뱅크는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온라인 은행이기에 은행 서비스 사용의 물리적인 제약이 없으며, 절감된 오프라인 비용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조달한다. 지점이 없는 대신 ATM을 통한 현금 인출이 가능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누뱅크는 한국의 토스와 상당히 결이 비슷한데, 초창기에 온라인 송금을 메인 테마로 잡았던 토스와는 다르게 누뱅크는 풀서비스 은행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누뱅크는 기존 은행들과의 차별점(상품, BM ,,)은 거의 없지만 누뱅크가 초창기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Interchange fee(당좌대월 수수료) 때문이다. Interchange fee는 고객들이 신용카드 한도를 늘릴 때마다 부과되는 수수료를 의미한다. 기존 은행들이 마이너스 잔액에 145%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한 것과는 다르게 누뱅크는 38%의 낮은 수수료를 부과했다.
누뱅크가 Interchange fee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오프라인 지점의 부재 때문이므로, 누뱅크가 브라질 최대의 온라인 뱅크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누뱅크의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97% 상승한 $1.06B이고, 총 이익 또한 전년 대비 100% 넘게 상승한 $0.5B를 기록했다. 영업 손실이 살짝 상승하긴 했지만, 염려할 수준은 아니고 매출 대비 매우 괜찮은 수준이다.
이런 매출의 폭발적인 성장보다 내가 봤을 때 누뱅크의 가장 놀라운 점은 Organic Acquisition이 80-90%를 육박한다는 점이다.
Organic Acquisition을 직역하면 유기적 획득이다. 이는 곧, 마케팅 말고 입소문만으로 누뱅크에 진입하는 고객들이 80-90%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고객들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은 월간 사용자 중 일간 사용자의 비율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이미 확보한 고객들 중에 누뱅크를 하루 동안 이용하는 고객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시로 누뱅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번 개설한 은행 계좌를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누뱅크의 충성 고객이 늘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고 해석할 수 있다.
누뱅크는 브라질뿐만이 아니라 남미 전체를 타깃하고 있으며, 남미 국가들은 브라질 하고 같은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원활한 시장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누뱅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특이하지 않다. 누뱅크는 그저 평범한 디지털 은행일 뿐인데,
지역과 문화의 특수성이 누뱅크에게 차별점을 만들어준다.
누뱅크는 지역적인 차별점에 의해 우위를 점한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IPO를 진행한 만큼 선진국 은행보다 더 나은 상품, 더 좋은 조건을 내세워 글로벌 투자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상대적으로 VC가 약한 남미에 누뱅크가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