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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호 Feb 20. 2024

아포리즘 20

2024.1.19~2024.2.20

천성이 선량한 자는 깊은 독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망당하며 살거나 또 그래서 삐뚤어질 수 있다.(2024.1.19)


오늘날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은 타성적인 소시민이 저지르게 되는 업보를 지적하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다.(2024.1.19)


근래 한국에서 조선족은 옛 유럽의 유대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즉 모든 내적 곤란함이 덤터기 씌워지는 대상.(2024.1.19)


고로 근자의 한국에서 소수자 정치를 표방하는 자의 진정성에 대한 한 척도는 다름 아닌 조선족에 대한 태도다.(2024.1.20)


도적이 되는 시험에서, 만점인 자, 50점인 자, 미응시자 중 어느 쪽이 우월한가?(2024.1.21)


어떤 내기에 대한 확신과 단언은 그 예측 근거가 불충분할 때, 그럼에도 판단을 해야 할 때 그 의미가 있다.(2024.1.22)


주지하다시피, 그 양해 가능한 내용과 분리돼 형식만 남은 유교적 관습은 미시 파시즘과 결합된다.(2024.1.22)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가로막는 건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만이 아니라 책임을 미루는 타성적 민중이기도 하다.(2024.1.23)


한국의 경우 동서양의 대립보다는 유교와 개신교라는 지배적인 생활양식 혹은 종교에 불교와 가톨릭이 대립한다.(2024.1.23)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좋아한다. 잔혹한 자기 "현실"을 보는 건 힘드니까.(2024.1.26)


제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척척 영웅이 되는 할리우드식 환상의 문법을 K-드라마는 치정 차원에서 이룩했다.(2024.1.28)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문제는 어떤 경쟁인가이며, 그릇된 건 거절해야 한다.(2024.1.30)


사실이 그렇든 아니든 비교적 많은 한국인이 인종주의자로 보여지는 것 자체엔 수치심을 느낄 줄 모르는 듯하다.(2024.1.31)


나치즘 같은 인종주의를 순수한 우월주의로 표상하는 건 나이브한 것이다. 외려 거기엔 묘한 질투가 있다.(2024.1.31)


거의 전 국민이 투기에 내몰리는 상황, 정체성들의 값싼 갈등들.. 이 모든 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2024.2.4)


일부 한국 젊은이들—힘든 세대—은 노인들에게 불평하지만, 지금 노인들의 상황도 세계 최고로 암울하지 않던가.(2024.2.5)


사회 문제를 논할 때 정확한 숫자 계산은 너무나 소중하다. 온갖 기만으로 문제를 흐리려 들기 때문이다.(2024.2.5)


퇴행의 시기다. 오늘날 극우적 담화들이 판을 치는 데는 진보적 가치를 스스로 박살 낸 진보 진영의 탓이 크다.(2024.2.6)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 나니 군중의 헤이트 스피치가 귀신같이 다시 득세한다. PC주의 아니면 혐오란 말이냐!(2024.2.8)


헤이트 스피치와 PC주의는 번갈아 득세하면서 적대적인 양 공생한다. 둘 모두 반동적 원한 감정에서 기인한다.(2024.2.8)


군중의 타자에 대한 불합리한 발작적 배타성은 가해자 자신의 배제 가능성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악순환.(2024.2.9)


일관성 없이 말을 바꾸는 자(규정적 반성)에서 말을 바꾼단 점에선 일관성 있는 자(반성적 규정)로의 변증법.(2024.2.14)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확인한 뒤에 드러내는 그 숨쉬듯 자연스러운 무례함이 관찰되면 바로 연을 끊는 것이 좋다.(2024.2.17)


가짜배기들이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징후도 없다.(20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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