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그프리트 Oct 08. 2023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과거가 있다. '그때는 그랬지!'라면서 회상에 젖거나 이를 밖으로 표출하여 꼰대라는 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쨌든 과거를 끄집어낸다는 건 망각이라는 늪에서 무언가를 건져내는 것이다. 음악, 음식, 풍경, 그리고 냄새 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책 또한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책은 위에서 열거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과거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형경 작가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온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2011년 재판이 나왔다.  대학시절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소설이다. 너무 좋아서……하기까지 했다.

당시 신간 도서 목록에서 보자마자 반가움에 덥석 샀다. 예전 책을 찾아보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의 독서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문고판으로 된 서양고전 또는 장편 동양 고전 소설을 읽었던 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 그리고 자발적으로 한국 소설에 집중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책을 많이 읽고 싶어 했던 마음에 따라 지금 생각해도 무모할 정도로 전공을 내팽개치다시피 하면서 독서를 했던 것 같다.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리얼리즘이 가득한 책을 사는데 용돈의 대부분을 소비했다. 어떻게 보면 180도 방향전환을 통한 지독한 편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금 같은 시기의 독서가 절반의 성공인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러한 편식이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독서와 어떻게 보면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대학시절의 책들은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주인공들은 모두 헌신하고 희생하고 고통받지만 이를 모두 극복해 내는 전형이었다. 그들에게는 제국주의와 지배층에 대한 승리 아니면 패배만의 길만 놓여있었다(물론 전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내가 기대하던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와 같은 개인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 고민하던 주제는 ‘어떻게 보면 회색분자와 같은 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이런 나는 언제 정신적으로 평안을 얻을까?’였는데 말이다.

우연히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책이 나에게 다가왔었다.

형조, 운형, 시현, 은혜, 민화는 소위 80년대 운동권이었다. 졸업 후 학교때와는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항상 현실을 부끄러워하던 이들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그러한 삶을 살면서도 개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 준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면서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읽었던 책을 거의 20여 년이 지난 이후 다시 읽었을 때...... 다섯 명의 주인공, 한 명의 죽음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나머지 주인공들의 이야기……‘당시에는 공감이 많이 갔지만 지금 읽어보면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인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30대가 되면 뭔가 이루어지거나 지금 겪는 마음의 갈등 혹은 미안함이 극복된 평안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난 주인공들처럼 극한까지 날 밀어붙이지 못했다. 머리만 복잡했었다. ‘가늘고 길게 ‘라고 합리화시키면서 적당히 살았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은 또 다른 미안함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었다.

30대가 되고 나니 책들의 주인공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20대를 보내지 않았으니까…..

30대가 돼서 평안을 찾은 것처럼 느낀 것은 망각 때문이었다. 20대를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책에 나온 다음과 같은 문장처럼 말이다.


“기억은 사금채취술과도 같다. 간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 소중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골라서 저장한다. “


책을 다시 읽으면서 '당시 20대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을 욕하면서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도 되었을 텐데…', '왜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자신들의 몸으로 부대끼며 살았을까?', '그들이 구하려는 사회에 자기 자신은 왜 포함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들은 울 때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부엉이는 부엉부엉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은 새인 거 같아.”


돌이켜보면 내가 감히 하지 못하던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헌신하던 그때의 20대들도 새처럼 자기 이름을 남몰래 부르면서 울었을 것이다. 받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그렇게 한계로 몰아간 이들이 많았다는 걸 봤었다. 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책의 표현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던’ 시기였고 사람들이었다. 다시 읽은 이 책은 당시의 내 주위에서 혹은 얼굴도 알지 못하던 동시대의 20대들의 힘들었던 삶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 때는 그랬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망각의 벽을 넘어 다시 바라본 20대는 풋풋하고 어리면서 설 익은 게 아니었다. 인생을 살면서 제일 정답같이 살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시기였다. 경험에 의해 영향받지 않고 경험과 싸울 의지도 충만하면서 순수한 열정과 이론만 존재하던 시기였다. 20대의 나는 그 이후와 비교해 보면 제일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시기였다. 주위 사람들도 그러했다. 30대가 되면서 뭔가 이상하고 찝찝하게 평안해지게 만든 망각이란 ‘헌신’과 ‘이타적’에 대한 것이란 걸 책을 통해 참으로 뒤늦게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찬성하지는 않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분신을 하고 대학 졸업을 미루고 그랬던 20대들이 주위에 있었다. 누군가는 꽃도 십자가도 없이 스러져가기도 했다. 그걸 망각하려 애써왔던 것이다.

뭔가 일이 꼬일 때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를 찾으라고 방송이나 베스트셀러에서 니체와 같은 철학자를 인용하며 말한다.

궁금했다! 나에게서 '처음'은 어디이고 어떤 ‘나’일까? 책에서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여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사회의 힘 권력의 힘 안락함의 힘에 굴복했다는 말이다. 20대가 넘어간 이후 우리가 이러한 힘에 굴복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여기는 때가 있을까? 오히려 그 시절을 치기 어린 시기로 포장하고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20대가 가장 정답처럼 살던 때였던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이 뭔가 이상하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것 같은 평안함이라면 우리는 20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20대는 콜린맥콜로우의 소설 가시나무 새에서 나오는 시구처럼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시기였다. 또한 불꽃같은 시기였다. 상투적 표현으로서의 불꽃이 아닌 책의 주인공인 은혜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말이다.


"불꽃이 참 아름다워. 저 불꽃 속에 사물을 살려내는 힘과 사물을 파괴하는 힘이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이 수수께끼 같아. 영화와 쇠락, 풍요와 가난....... 불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상반된 이미지를 내부에서 똑같은 키로 키울 줄 알기 때문인가 봐"


파괴도 할 수 있고 생성도 할 수 있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불꽃같은 영혼의 힘이 감싸고 있던 20대를 다시 기억해내고 싶다. 책의 표현처럼 '사금채취술' 같은 기억이 아닌 내가 가장 정답처럼 살던 그때를 기억하고 그 시절을 부끄럽게 대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과거를 끄집어낼 때 책은 이러한 역할을 한다.

책장에 묵혀두었던 그때의 책들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t-saXvUSE


Nat King Cole - Too Young (냇 킹 콜 - 너무 어려) , 1951

They try to tell us we're too young

Too young to really be in love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말하려 하죠

진짜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요


They say that love's a word


사랑은 하나의 단어라 해요


A word we've only heard

But can't begin to know the meaning of


우리가 들어보긴 했지만 그 뜻을 알기엔

아직도 멀었다는 그런 단어라는 거예요


And yet we're not too young to know

This love will last though years may go


하지만 우리가 그걸 모를 만큼 어리진 않아요

세월이 흘러도 이 사랑 변함없을 거예요


And then some day they may recall

We were not too young at all


언젠가 그들은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우리가 조금도 어리지 않았다고요


And yet we're not too young to know

This love will last though years may go


하지만 우리가 그걸 모를 만큼 어리진 않아요

세월이 흘러도 이 사랑 변함없을 거예요


And then some day they may recall

We were not too young at all


언젠가 그들은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우리가 조금도 어리지 않았다고요

작가의 이전글 끝나지 않는 이분법의 전성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