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딸아이가 씩씩거린다. 반대항 배구 대회에서 7반 여학생 팀에게 11대 9로 졌다는 이유다. 승패 상관없이 스포츠를 즐겨야 한다고 수십 번 당부했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 마음 너무 알지.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퇴근한 남편에게 그녀의 컨디션에 대해 미리 귀띔했다. 아이의 기분을 좀 풀어달라는 의미다. 학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는 아이에게 남편이 모른 척 말을 걸었다.
"오늘 경기는 어땠어?"
아이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같은 반 남학생들이 여학생 팀 응원을 안 해줬다. 여학생 팀 에이스 두 명이 감기와 고열로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등등. 속이 상해 고개를 푹 숙이고 저녁을 먹는 아이에게 남편이 말을 시작했다.
"응원을 강요할 수는 없지. 그리고 승패를 떠나서 스포츠는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게 중요한 거야. 최선을 다해서 신나게 시간 보냈지? 그럼 된 거야. 누구나 다 배구를 잘할 수는 없잖아. 못해도 즐기면 되는 거야."
아이의 얼굴이 점점 식탁과 가까워진다. 불만을 쏟아내던 입을 꾹 다물었다. 남편을 쳐다보며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눈치 없는 남자는 내 스탑 사인을 캐치하지 못했다.
"엄마를 봐봐."
앙? 내가 왜 거기서 나와.
"엄마가 스케이트 타는 거 봐봐. 그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 그 정도면 그건..."
바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아들었다. 피겨를 배우는 딸아이에게도, 스피드 스케이트를 타는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좀처럼 늘지 않는 나의 실력은 거대 미스터리다.
"그래도 엄마는 스케이트 타는 거 좋아하잖아. 잘하고 못하고 보다 엄마처럼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알겠지?"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가족이 다 같이 웃는다.
내가 말한다.
"맞아. 엄마는 잘 못 타도 스케이트가 좋아. 그럼 되는 거지. 꼭 1등만 스케이트 타나? 하하"
기승전스케이트로 오늘 밥상머리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누구 하나는 바보가 됐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행복해졌다면 나도 행복하다. 가족의 평화를 위한 나의 몸테크는 쭉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