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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초 May 22. 2024

주간 개초 <1호> 및 목차

소설편: 스토너, 존 윌리엄스

*
들어가며  


최근에 시를 주제로 다룬 뉴스레터 한 편을 받았다. 읽다 보니 나도 대충 뉴스레터나 잡지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마침 요즘 스토리도 안 떠오르고 그림도 잘 안 그려지고 하니 차라리 오랜만에 글을 써보자 싶기도 했고.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사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썼다. 글을 쓰면 그냥 내가 멋있어 보일 줄 알았다. 근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
목차 


‘주간 개초’라고 거창하게 내 이름 걸어놓기는 했으나 막상 뭘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떤 걸 다뤄야 글을 쓰는 나도 재밌고 읽는 사람도 그럭저럭 흥미가 돋을까… 하다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게 가장 무난하겠지 싶다. 각 내용에는 결말 등 스포일러가 담겨있으니 주의.  


1호: 주간 소설 - <스토너> 
2호: 주간 영화 - <위플래쉬> 

이후 미정


*
주간 소설: <스토너> 



나름 창간호라는 의미가 있으니 어떤 책에 대해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에 읽었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집어 들었다. 도파민이 팍팍 분비되는 자극적인 맛은 없으나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마음 한구석에 떠오르곤 했던 소설이라 골랐다. 주말 오후 꽃이 만개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상념에 잠겨있을 때, 얼굴 위로 살짝 내려앉는 벚꽃잎 한 장 같이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이 책은 제목대로 ‘스토너’라는 이름을 지닌 어떤 인물의 전 생애를 다루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기억나지 않는 시절부터 농사일을 돕던 스토너는, 농과대학에 진학했다가 영문학 교양 강의를 듣고 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교수가 되기 위해 매진하면서 동료들과 갈등도 겪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낳고 살다가 불륜도 저지르고 말미에 쇠약해져 병으로 죽는다.  


딱히 기승전결이랄 것도 없고 드라마틱한 장면도 없다. 그냥 어느 한 사람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묘사하다가 끝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기억에 남았다.  


아래는 1장의 내용을 요약한 건데, 작품은 시종일관 이런 차분하고 잔잔한 톤으로 진행된다.  


스토너는 1891년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부모님은 젊은 나이였으나 아버지는 서른 살에 이미 쉰 살처럼 늙어 보였고 어머니는 하얗게 센 반백의 머리를 지녔다. 스토너는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세 가족은 텅 빈 눈으로 농사를 지으며 입에 풀칠하는 일상을 반복해 왔고,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스토너는 그저 쇠약해진 아버지를 대신해 더 많은 밭일을 맡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인생의 방향이 조금 틀어진 건 어느 날 아버지가 스토너에게 농과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유하면서이다. 옆 마을 너머로는 가본 적조차도 없던 그는 그해 가을 도시로 나가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 근처에 있는 친척 집에 머물면서도 가축을 기르고 장작을 패는 고된 일상은 똑같았다.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노동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학 공부 역시 일을 도울 때처럼 아무런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기계적으로 했다. 그가 비로소 자신이 대학에 온 이유를 깨닫게 된 건 2학년이 되어 필수 교양 과목인 영문학 개론을 듣고 나서다.  


강의를 맡은 아처 슬론 교수는 까다로운 사람이다. 스토너는 기계적으로 작품의 연대와 저자의 이름을 모두 외웠지만 2차 시험까지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다른 강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했지만 책을 왜 읽는지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여느 때처럼 수업을 듣던 스토너에게 어느 날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 그 순간 스토너는 교수가 시를 읽는 동안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날 이후 스토너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그 해 2학기에 그는 농과대 커리큘럼을 버리고 영문학 강의를 신청한다. 그렇게 학사 과정을 마친 스토너는 대학원으로 납치를 당하게 되는데…. 


뒤 내용은 직접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자세한 요약은 여기까지만 하려고 한다.  


…라고 했지만 조금 더 말하자면, 스토너의 직책은 죽을 때까지 조교수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결혼 생활은 고통스러웠고 자녀는 엇나갔다. 동료들이나 수강생들 중에서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특별한 것 없는,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는 인생이다. 그리고 그런 별 볼 일 없는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다룬 것이 사람들의 기억에 이 책이 남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스토너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정말 1900년대에 어딘가에 살았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통의 사람이 살면서 겪을만한 보편적인 감정과 갈등을 삶에서 마주한다. 그의 인생에 특별하고 자극적인 사건은 없다. 사이다 같은 일도 없다.  


젊은 시절 벌어진 세계 대전에 참전해 영웅이 되는 대신 대학에 남아 조용히 학자의 길을 걸었고, 세상을 놀랍게 할 비범한 책을 쓰지 못한 대신 소소한 논문을 계속 집필했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을 하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한 끝에 불륜을 저질렀다가 들키고 정리한다.  


스토너의 내면이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건 분명하지만, 막상 그가 자신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산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용히 관조하고 감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 한 권으로 압축된 스토너의 고난은 답답하고 숨 막히는 면이 있다. 스토너는 그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인생 전체에 걸쳐 인내해 나갔다. 그리고 그건 현실 인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고충과 무게가 있고 제각기 주어진 현실을 견디면서 산다.  


그런 점에서 스토너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를 나의 삶에 투영해 보게 된다. 이를테면 인간관계라든가.  


스토너에게는 몇몇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있었다. 부모님과, 영문학 교수였던 아처 슬론, 대학 친구들인 매스터스와 핀치, 그 외 직장 동료들, 아내 이디스와 딸 그레이스, 말년의 사랑이었던 캐서린.  


부모는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으로 맺은 유대관계의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살기 벅차서 사랑을 많이 주지는 못했지만 스토너에게 농부의 기질을 물려준다. 농사꾼이 평생 땅을 일구듯 스토너 역시 일생을 문학과 교육에 몰두한다. 친구들이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입대할 때도, 농부가 땅을 두고 여행을 떠나지 않듯이 스토너는 대학에 남아 공부를 계속한다.  


아처 슬론 교수는 스토너를 문학의 세계로 이끌고 대학원으로 납치를 강행한 스승이다. 기억조차 안 나는 어린 시절 겪은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그는, 문학과 인간을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는 사람이다. 스토너는 아처 슬론과의 대화 끝에 입대하지 않기로 한다.  


대학 친구들인 매스터스와 핀치. 입대하지 않겠다는 스토너에게 안색을 굳히고 실망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들과 함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던 젊은 날 스토너는 즐거워했었다. 


매스터스는 입대한 지 1년 만에 전사하여 스토너의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남았다. 핀치는 직장 동료로서 인생을 함께 보내며 스토너의 모든 행복과 불행을 지켜본다. 결혼 생활과 불륜, 마지막에는 임종까지 지킨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가족으로써, 친구로서, 직장 동료로서, 그 외 인간관계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반대로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누구와 함께했던가?  


질문에 더듬더듬 답을 하다 보니 생각만큼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지 않다. 물론 후회 없는 삶은 있을 수 없겠지…. 그러니 삶이 안겨주는 고통과 기쁨, 사랑, 인내, 열정, 후회 등을 성실하게 겪은 뒤에 죽음을 맞이한 스토너처럼 나도 묵묵히 살다 가기를 바란다.  


-여담: 후기를 보면 작가와 독자가 스토너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대개 상반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본다. 그에 반해 작가는 스토너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훌륭하고 영웅적인 것이었다면서, 자신의 원고를 타자치며 울던 학생을 포함한 독자들의 반응에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작가는 그냥 덤덤하게 이런 인생이 있었다고 말할 뿐이었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울고, 웃었다. 그리고 영원히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자국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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