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의 순간에서 삶에 대한 쉼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도시가 아닌 시골로, 번화가가 아닌 호젓한 곳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곳에 조용하고 편안한 숙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숙소가 호화로운 호텔이나, 개인 수영장이 딸린 풀빌라일 필요는 없다. 골방 같던 제주도의 어느 숙소에서도 나는 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내려온 지 어느덧 1년 하고 반이 지나갔다. 그사이에 다사다난했던 일들로 내 삶이 송두리째 유린당하며 너덜너덜해져 감을 느낄 때, 좋은 조건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그리고 나에게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디에서 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2023년 8월 대구의 날씨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성의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근처 포항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하지만 여름의 포항은 조용함과 거리가 멀었다. 어디에 가도 사람이 넘쳐날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낚싯대를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좀 쉬자라는 생각에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상숙소가 눈에 띄었다.
<쉼으로 향하는 공간, 엔소쿠 료칸 호텔>
어제 오픈한 듯 어설픈 홈페이지에는 일본 료칸의 이미지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한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다다미로 침실 바닥을 인테리어 하고, 개별 자쿠지와 기모노를 입어볼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모습에 이곳을 숙소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동해바다가 보이는 오션뷰도 한몫했다. 홈페이지에는 일정금액을 추가하면 저녁식사와 조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안내가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호캉스다.
외출 중인 아내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새로운 숙소의 홈페이지 주소와 함께 이번 주말로 예약완료했으니 준비하라는 일방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그녀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실패구라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진과 함께 답장이 날아왔다.
"오케이 준비완료"
포항으로 가는 길은 각자의 여행지로 향하는 휴양객들로 꽉 막혀있었다. 1시간 20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2시간이 걸렸다. 숙소는 3시부터 입실이 가능하니, 근처에서 점심을 때우기로 했는데 적당한 곳이 없었다. 평소 낚시를 다니면서 눈여겨본 횟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항 조사리간이해변에 있는 <혜림횟집>이라는 곳인데, 물회가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칠포와 월포 등 유명한 해변가로 사람들이 몰린 탓인지 조사리해변은 좀 한가한 듯했다. 덕분에 횟집에 자리가 생겨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참가지미 물회에 매운탕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장님의 말에 물회 2그릇을 주문했다. 아내와 나는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동해바다를 조용히 바라보며, 음식이 어서 나오길 기다렸다. 수분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손수 음식을 가져오셨다.
<이 집 물회는 조금 특별한데 초장이 아니라 식당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다.>
화려한 야채가 수북하게 쌓인 일반적인 물회가 아닌 참가지미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포항식 물회였다. 여기에 물과 밥을 말아먹으면 맛있는 물회가 완성된다. 그리고 매운탕과 함께 이상하게 생긴 가자미조림이 나왔는데 포항 토속음식이라고 한다. 생긴 거와 다르게 짭조름한 맛이 물회와 잘 어울렸다. 동해 푸른 파도와 함께 먹는 물회에는 바다의 맛이 담겨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오늘의 여행지이자 숙소인 '엔소쿠'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