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여행 - 3 -
언제부터인가 ‘테마파크’라는 단어에 유독 눈길이 갔다.
예전에 테마파크 조성에 대한 타당성 연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럽게 테마파크가 되었다.
보통 테마파크라고 하면 용인의 에버랜드, 잠실의 롯데월드 그리고 디즈니랜드 등을 떠올리지만, 테마파크는 단순한 놀이공원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현실과 단절된 비일상성이 지배하는 모든 공간을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잘 조성되어 있는 테마파크는 용인의 한국민속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방문한 대구광역시 군위에도 테마파크가 있다.
“군위 삼국유사 테마파크”
삼국유사와 군위의 관계는 각별하다. 삼국유사의 저자이자 고려의 국존이었던 일연스님이 군위에 있는 인각사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군위에서 남녀노소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삼국유사를 주제로 테마파크를 조성하였을 것이다.
사실 일연스님을 테마로 한 공원이 경상북도 경산에도 있다, 바로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인데 경산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곳 중 하나다. 이 글을 읽고 한 번쯤은 삼국유사 테마파크와 같이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삼국유사 테마파크는 군위읍내와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화본역과는 7분 거리이니, 화본역과 함께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자그마한 로터리를 지나 삼국유사 테마파크로 향하는 길은 마치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약 1Km 남짓한 거리를 차로 운전하면서, 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그 순간이 꽤 인상적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우는데, 생각보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아 보였다. 눈썰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아내가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아빠들의 손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들려있었다.
입장권은 대구경북 주민이라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가 할인받은 김에 해동열차라는 것도 타보자고 졸라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로 구매하였다, 하지만, 이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테마파크의 입구인 가온문을 지나면, 종합안내소와 상가들이 등장한다. 안내소에서 안내 책자 하나 들고 들뜬 마음으로 입장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사라졌다. 어디 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곳엔 예전에 유행했던 인스타그램 모양의 포토존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볍게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테마파크 안으로 걸어갔다.
첫눈에 보이는 것은 신화목이라는 거대한 나무 모양의 조형물이었는데,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실제 나무 같아서 놀라웠다. 신화목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유사와 단군신화의 관계 또한 특별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 즉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이 삼국유사를 출처로 하기 때문이다.
해동열차의 출발시간까지 아내와 신화목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해동열차는 구름쉼터라는 곳에서 출발하는데, 말 그대로 구름쉼터였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풍백과 운사 그리고 우사를 모티브로 하여 마치 구름에서 신선들이 내려오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구름 아래에서 아내와 함께 해동열차를 기다리는데, 문득 오랜 전 기억이 떠올랐다.
비슷한 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6년 정도 일했던 직장인데, 힘들었지만 재밌던 순간들로 가득한, 내 청춘과 열정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언젠가 다시 비슷한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는데, 엇비슷한 향기가 나니 다시금 마음이 동하는 듯했다.
생각의 찰나, 해동열차가 도착했다,
해동열차를 타면 삼국유사 테마파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생각보다 테마파크의 부지가 넓기에 거동이 불편하거나 초행의 객이라면 해동열차를 한번 타보는 것을 추천한다.
해동열차를 운전하는 기사님이 간단하게 놀거리와 볼거리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시는데, 2025년 1월의 매서운 겨울 덕분인지 모두 정비 중이라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곧 키즈파크가 새롭게 곧 개장을 한다고 하니 아이를 동반한 객들에게는 희소식이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친화적인 테마파크여서 그런지 해동열차에는 어른에 비해 아이들의 수가 많았다. 저출산 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보니, 물부족국가처럼 과장된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어릴 적을 생각하면, 동네 어린이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니 이러한 망상은 현실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열차가 잠시 멈췄다. 토끼동산이라는 곳에서 토끼가 아닌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이란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들이 신나 뛰쳐나갔다. 덩달아 신이 나 뛰어나갔는데, 염소똥 냄새가 아찔하게 풍겨왔다. 아이들은 똥냄새마저 신난 건지 기사님이 건네주는 낙엽을 싹쓸이해 가며 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아이 아빠들도 신이 난 듯 아이들과 웃으며 뛰어다니는데 행복이 넘치는 풍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도 땅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염소에게 다가갔다가 기겁하고 다시 열차로 돌아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똥냄새가 너무 역했다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먹이 주는 시간이 끝나자 열차는 다시 출발하여, 혜통광장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걸어가기로 하였는데, 아직은 추운 날씨 덕분에 이내 후회했다. 혜통광장에는 설날연휴를 맞이하여 전통놀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국궁에서부터 투호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데,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난 것 같았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윷점을 보기로 했다. 힘차게 윷을 하늘로 던지자, 거대한 윷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아뿔싸 백도였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혜통광장에 울려 퍼졌다.
빠르게 윷판을 수습하고 다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눈썰매장이 마련되어 있는 한울광장이었다. 이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터와 놀이기구들 보고 와서 그런지 삼국유사 테마파크는 확실히 아이한테 친화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눈썰매장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행복한 비명과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몸을 녹이기 위해 풍류정이라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에는 이미 따뜻한 온기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른들의 웅성임과 아이들의 재잘거림 그리고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고, 카페에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위해 몰려든 객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가온광장을 가로질러 전시관인 가온누리관으로 가는 길, 우측 언덕 위로 커다란 사자상 모형을 한 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서를 살펴보니 지철로사자상이라고 하는데, 아마 신라 지증왕 시설 신라장군 이사부가 나무로 만든 사자를 이용하여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했다는 설화를 배경으로 제작한 듯하였다. 사자상 전망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추위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였다.
가온누리관 앞 스타벅스 캡슐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녹인 뒤,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전시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전시관은 나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삼국유사에 담겨있는 신화와 설화들은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의 신화와 설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14수의 향가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의 정수 중에 정수로 꼽힌다. 이러한 내용이 전시관 곳곳에 알차게 담겨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2층은 설화체험관이라고 하여, 설화 속 주인공이 되어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비형랑과 귀신이야기 등 다양한 설화를 바탕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 아이와 함께 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전시관 안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문으로 가는 길,
좌측 언덕에 웅녀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중을 위하여 아껴두기로 했다.
올해 9월,
세상 밖으로 나올 내 아이가 좀 더 자라면,
그때 함께 다시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 2025년 설을 앞두고 방문한 군위에서 처루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