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 헤엄치기 02

by 모쿠웍스

인터넷에서 수박을 산다고 치자. ‘수박’ 두 글자만 쳐도 수천 개 쇼핑 사이트가 뜬다. 이 중 무엇을 살까? 무엇이 눈에 띌까? 여기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있다. 하나는 이미지다. 사람은 예쁜 것에 끌린다. 포장이 예쁘면 눈에 띄고 내용물도 괜찮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리뷰다. 리뷰가 이미지보다 강하다. 썸네일이 예쁘고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리뷰가 없으면 사지 않는다. 반대로 이미지가 형편 없어도 리뷰가 많으면 사람들은 그 제품을 믿는다.


군중 심리다. 거리에서 세 사람이 한 곳을 가리키면 대부분 그곳을 쳐다보게 된다. 때문에 지금 들어온 이 첫 주문은 중요하다. 나를 가리키는 최초의 3인, 그 중에서도 최초의 1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첫 작업은 잘 풀리지 않았다. 모 학회 행사 디자인을 위한 키 비주얼 제작.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여기에 상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그의 요구는 어떤 상황을 묘사한 이미지였다. 그는 그 이미지를 ‘키 비주얼’이라고 표현했고, 소통 오류는 여기서 출발했다.


그가 원한 이미지는 실사 촬영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촬영은 시간과 예산 문제로 당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작업 요청과 함께 이미지 한 장을 보냈다. 나에게 연락하기 전 혼자 생성형 AI와 씨름해 만든 이미지였다. AI 이미지 특유의 이질감—소위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전통적인 디자인 문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컬러 시스템과 타이포그래피 체계, 스톡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는 사진의 톤앤매너를 설계하면, 그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마 AI로 생성한 이미지든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든, 직관적이고 완성도 높은 한 장을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키 비주얼’이라는 말에 집중했고 색상, 서체, 컨셉 등을 간단히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예시 삼아 배너 디자인도 함께 제공했지만, 예상한 것과 다른 결과에 그는 실망했을 것이다.


소통은 점점 어긋났다. 수정 횟수를 소진한 뒤엔 아무 답변이 없었다. 후속 배리에이션 작업을 위한 파일을 보내도 확인하지 않았다. 거래는 일 주일 뒤 자동 종료됐다. 번 돈을 출금할 수는 있었지만, 별 다섯 개 리뷰를 부탁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은 ‘키 비주얼’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소통 오류에 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원했던 건 ‘키 비주얼’이 아니라 ‘아트워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오류를 바로잡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필요를 채워주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걸 깨달은 건 최근의 어떤 작업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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