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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Feb 15. 2024

발굽/ 박광영

『발자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

내게 온 詩集 시집보내기를 해야 하는데 마음뿐 게으름이 도가 넘었다. 우편으로 배달된 책들을 쌓아놓고 세월만 좀 먹느라 좀 오래 걸렸다. 박광영 시인의 『발자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에서 발굽을 소개한다     


발굽/ 박광영  

             

아버지의 발바닥은 

말발굽이었다     


팔십 평생, 한 번도

균열 없이 살아온 줄 알았는데     


양말을 벗기자

생生의 가뭄이 쩍쩍 드러났다

 

짓눌려 오래전부터 터진 맨살

얼레지꽃 이파리처럼 얼룩져 있다     


틈을 보이지 않으려

당신은 늘 깜깜한 바닥에 눌어붙어

질척거리고 비틀렸겠지     


그러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들여다볼수록

점점 다가오는 

또각또각 말밥굽 소리   

  

갈라진 틈새의 벽,

막막하게 울린다     


          


시인의 “발굽”이란 시를 읽으며 고향집에 계신 아버지의 “얼레지꽃 이파리처럼 얼룩”진 발바닥이 생각난다. 아버지와 장난을 치느라 발바닥을 간지럽히면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소리 내서 웃으시는 주름진 얼굴과 표정이 스친다. 어디 내 아버지뿐이겠는가? 


여기서 나오는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 아버지는 세상과 적당한 타협 없이 잘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균열 없이 살아”왔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은 모든 자식들의 외면된 마음일 수도 있다.     


팔십 평생 생을 살아온 아버지 “생生의 가뭄”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더욱더 열심히 사셨으리라.  “틈을 보이지”않으려고 늘 깜깜한 바닥의 어둠만을 디뎌오셨을 아버지. 이제 화자는 “질척거리고 비틀거렸”을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팔십 평생 말밥굽처럼 갈라진 틈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세상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살아온 세월이 이제야  들리게 되었음을 “똑각또각 말밥굽 소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말밥굽 소리는 “갈라진 틈새의 벽,/ 막막하게 울”려 청각으로 스민다. 눈을 감아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들려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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