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박노식 시인의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에서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란 시를 소개합니다.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 박노식
빗소리에 민감한 잎새 같은 너의 눈빛은 저항할 줄 모르고 나는 아프다
나의 우울증은 너로부터 왔으므로 아름답다
서러우니까 속으로 우는 별들처럼 너의 다정한 말과 목소리에도 그늘이 있음을 안다
상처는 깃털 같은 것
열이레 달은 손등으로 턱을 괴고 있어서 슬퍼 보인다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 날을 새는 건 너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시집을 펼쳐 읽으며 날마다 시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 詩는 詩일 수도 있고, 時일 수도 있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도 좋은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든 때맞추어 화자에게 와준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이번 시집에는 나와 너와 그의 이야기가 유독 많다. 나를 둘러싼 세계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그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나는 내가 아닌 너와 그로 인해 돌아가고 있다. 나를 온전히 찾을 수 있는 것도 너로 인해 오는 詩와 그로 인해 오는 詩다. 그 詩가 時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라는 시를 읽는다. ‘민감한 잎새 같은’ 민감하다면서 ‘저항할 줄 모르고’ 그리하여 ‘나는 아프다’라고 한다. 민감해서 저항할 줄 알았던 너라면 결코 화자의 정서를 흔들지는 않았으리라. 화자의 예측을 빗나감으로 인해 시작된다.
화자의 아픔은 아름다운 우울이 되어 다가오고 너의 그늘, ‘상처는 깃털 같은’것이라고 위로를 건넨다. 마침내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 날을 새’면서 화자는 ‘너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너는 내가 아닌 나를 둘러싼 세계다. 그 세계를 이해한다고 한다. 자신이 아니라 너를 이해한다는 것은 배려하는 마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위한 배려는 없기에 열이레 달이 슬퍼 보이는 것이다. 화자는 이해를 핑계로 세상에서 받은 아픔을 ‘섬진강가에 홀로 앉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