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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Sep 14. 2024

직장일기: 9월

무거운 조직에서 가볍게 적응할 수 있나요?

연휴를 코앞에 둔 평일의 마지막 근무일에는 회사에서 조기퇴근을 독려한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다. 9월이라는 숫자가 어색하게 말도 안 되는 더위를 마주하는 현실에서 단비 같은 희망은 괜한 습도만 높일 뿐 현실은 매우 아름답지 않았다. 헛소문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탓에 조기퇴근은커녕 근무시간을 미뤄서 퇴근을 늦춰야 할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에 나는 허탈한 웃음만 났다. 기대감은 항상 어긋나면 커다란 충격을 동반하기에 기대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약속이 어처구니없게 이렇게 매번 배신을 한다. 스스로를 자책하더라도 현실은 변할 리가 없는데, 일말의 기대는 왜 항상 나를 밀어붙이는가. 

파티션 너머 끝나지 않는 협의로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나와 대비되듯 회의실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둘씩 명절의 부푼 마음을 품고 퇴근을 하는 직원들을 나는 애써 부러운 눈빛으로 마중하며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나를 가엽게 여기며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스스로를 재차 재촉해 보았다. 


나는 아직까지 회사에 적응이 더딘 것 같다. 아니 과연 앞으로 적응이 가능할까. 관성처럼 자꾸만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의 행동처럼 끈질긴 타성에 반하여 조직이 끌어당기는 방향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나를 매번 발견하게 된다. 이유는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안건으로 모인 회의에서 의견을 묻는 상사의 제안에 너무 솔직한 비평으로 받아치는 패기로 순식간에 회의장을 급속냉각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점에도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직원들은 회의실을 벗어난 나와 거리를 두며, 그들은 나를 무색무취의 순수함으로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처럼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미 사전 협의로 직원들의 함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조율된 의견을 언급하지 않은 게 나의 허탈함을 배가시켰다. (그들은 나에게 자그마하게 언급했다 했지만 그것은 아주 귀엽고 작은 쪽지처럼 흘러 지나가듯 조잘거린 위선이었다 : 하지만 그 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어색한 이방인임을 몸소 분명히 증명해 보였다) 

오후에 우스갯소리처럼 왜 그때 그런 비평을 논해서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냐는 농담이 반쯤 섞인 탓으로 나를 다그치는 상사의 코멘트가 어이없게 느껴질 즈음, (나는 실제로도 건치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크나큰 감정을 담지 못하리라는 사실로 스트레스를 덜어내 보였다. 

이렇게 며칠만 지나면 별것도 아닌 일에 대해 마음을 쓴다. 회사는 격동의 감정을 나에게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시간을 소비하며 사람을 지치게하는 메마른 인성을 강요하는 공간이다. 보란 듯이 억압하려는 타인의 강요를 흘려보내고, 바람에 휘둘리는 갈대처럼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다가도 언제인가 불쑥 드러나는 근성 탓에 그렇게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회의에서 사람들은 이미 정리된 결과물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씩 던졌다.(나도 부정적인 의견으로 그들의 행위에 동참했다) 이렇듯 덩치가 큰 조직은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어, 작은 움직임조차 매우 조심스럽고 행동이 느리다. 비교대상이 되어버린 과거의 구조에 빗대어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이 무겁고 많은 생각들이 버겁게 느껴진다. "큰 조직은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명쾌하지 않은 핑계로 현실을 부정하라는 친구의 조언이 답답하기는커녕 진실의 열쇠처럼 당연함을 깨우친다. 스스로가 버겁게 느끼면서 무게를 던지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누워서 침을 뱉는 논조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현실에 여전히 거리감을 느낀다.

한 명 한 명의 생각을 담아 괴물 같은 결과물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면 사람들은 만족할까. 아니, 그들은 당혹스러워 하기 이전에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고. 시안 A와, 시안 B 그리고 피드백과 첨언이 확대되어 부풀려진 가공과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의견이 묶여서 최종 결과물이 된다. 애초의 원형을 찾아볼 수도 없고, 기준이 분명했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방향에 결정자도 책임자도 낯선 모습을 애써 익숙한 척 마주하지만 어색한 조우는 그마저도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그게 조직이고 회사다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적응이라는 강요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격동의 평일을 보내고 주말이 왔다. 금요일의 저녁은 항상 행복하고 줄었다 늘어남을 반복하는 감정의 격차만큼이나 마음의 씀씀이가 후해지는 날이지만 마냥 잊어버리고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은 집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일주일을 되새기고 자근자근 씹어보며 그날의 날들을 돌이켜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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