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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Oct 20. 2024

고장나지 않은 사고

또 다시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책상의자가 고장 났다. 약간 등을 기대면 뒤로 젖혀지는 각도가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너무 중력을 거스르는 꺾임으로 뒤집어지는 바람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우스꽝스럽게 뒤로 자빠지는 화는 면했지만 가만히 앉아있어도 들썩거리는 엉덩이 부분의 쿠션감은 도저히 견딜만한 의자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어서 새 의자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저번주에는 도어록이 말썽을 부려서 후면을 뜯어내며 이런저런 버튼을 눌러보기도 건전지를 교체해보기도 하며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결국에는 수리기사님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고장이 난 상태에서 문이 잠겨지지도 않아 수리가 될 때까지 누군가 집안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조금 늦을 거라던 기사님은 세 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다.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뚝딱뚝딱 도어록을 해체하고 5분 만에 수리를 마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손놀림으로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심플하게 수리를 마친 나는 그동안 머리를 굴리며 궁리했던 노력이 허무해져 앞으로는 결코 수리를 맡기지 않도록 사용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제품 고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나를 의아해하던 기사님은 오히려 반문했다. 3-4년 정도 썼으니 부속품이 낡아서 그런 거라며.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의 생애주기가 그렇게 빨라졌던가? 겨우 몇 년 사용하면 고장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니. 사용자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제품 자체가 노후화되기 쉬운 상태라면 아무 의미 없는 노력에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의자 또한 6-7년 정도 사용한 듯하다. 그리 비싼 제품은 아니지만 집안에서 유일한 의자 노릇을 하며 큰 역할을 기여했는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게 되어 매우 애석한 건 사실이다. (늘 이별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인가) 색상이 집의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아 늘 신경이 쓰이던 붉은 색깔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죽음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새 의자를 사야겠다 마음을 먹고 이케아를 갔다. 미리 인터넷으로 점 봐둔 두 제품이 있었는데, 의자의 특성상 가격을 제외하고는 편안함 그리고 착좌감(?)을 온라인으로는 확인을 할 수 없어서 매장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가한 주말에 갑자기 목표를 던저준 의자에게 감사함을 보내야 할 지모를 감정을 추스르며 한 시간 넘어 도착한 매장에는 쇼핑을 하러 온 가족 단위의 고객들과, 이런저런 모양을 한 의자들이 즐비했다. 여러 의자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앉아보고, 예리한 눈으로 모양새를 좇으며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다. 결국 모양새나 앉았을 때 주는 안정감으로 두 제품을 골랐고 그 가운데 가격면에서 월등하게 좋은 한 제품이 맘에 들었다. (결코 그것은 빨강이 아니다) 선택을 하고 나서도 과연 이 제품이 적당한가. 집에 들일 정도로 적합한 새로운 제품인지 잠잠히 고민했다. 


재화가 넘치다 못해 과잉돼서 선택지가 혼란스럽고 이미 물건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회에 살면서 나는 또다시 구매와 소비의 늪에 대응하며 순응하게 된다. 일회용품이 삶을 잠식하는 사이에 익숙해진 쓰고 버린다는 철학은 개개인의 자세에도 미세플라스틱처럼 세밀하고 조악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쓰고 버릴 수 있다는 일회용 사고로 대처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장 난 의자가 나의 고장 난 사고로써 남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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