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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Mar 31. 2023

시속 160킬로미터


모터사이클 위에서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어가면 시간 개념이 흐릿해지면서 공간감 역시 와해되는 순간이 온다. 전방 시야각은 확연히 좁아지고 좌우의 물체들은 하나의 고정된 형상이 아닌 늘어난 선과 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략 1킬로미터 전방은 하나의 흐릿한 검은 점이 되고 내가 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이 내게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로 밖 제3자의 시선에서 라이더를 바라보면 시공간은 기존의 세계와 다를 바 없지만 라이더가 달리는 시공간, 즉 시속 160킬로미터만큼 그의 시공간, 그의 세계는 도로 밖에 정지해 있는 사람의 세계와 엄연히 다른 곳이다.


이 상대적이고 그만큼 특별한 세계에서 라이더가 최선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건 자세를 더욱 낮춘다거나 핸들을 쥔 손에 힘을 뺀다거나, 또는 전방주시를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되어' 있다.


시속 160킬로미터 시공간에서 제일 중요한 것, 하지만 제일 놓치기 쉬운 것은 고른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 그 찰나에 집중하되 길게 끌지 말 것, 다시 들이쉬고 다시 내쉬는 반복을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그 순환에 끊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호흡이 제일 중요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 같아 김 빠지게 들리겠지만 시공간이 달라지면 호흡은 급작스레 불안해진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끊김이 생기면서 숨이 가빠진다. 호흡이 무너지면 자세와 감각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호흡은 중요하다. 고른 호흡은 더욱 중요하다. 고른 호흡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다른 모든 것의 시작이고 배경이며 전부다.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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