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3년간 처음부터 맡아왔던 프로젝트가 있다. 이걸 회사에서 다른 팀으로 이관하려 한다고 들었다. 상심이 클까 싶어 동료를 찾아가 괜찮은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결정하는 걸 보고 본인도 결심하겠다 했다. 새로운 팀에 가서 프로젝트를 이어서 할지 아니면 프로젝트를 떠나보낼지. 씩씩하게 말하는 동료에게 마음이 쓰여 내 경험상 이런 경우 회사는 이미 답을 정해놓았으니 당신이 하고 싶은 바를 미리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말이었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와 나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내가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냐며 웃어 보였다.
아, 이 친구는 내가 오래전에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해주고 있구나. 하지만 난 내가 했던 말대로 살고 있지 못하구나. 내심 부끄러웠다.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와 나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은 짓은 진작 멈췄지만, 난 프로젝트 아닌 또 다른 수많은 것들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는 잠시 왔다 가는 손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프로젝트가 잘된다고 내가 잘난 것도 아니며 안된다고 내가 못난 것도 아니다. 회사라는 공간,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그들과의 각종 사건 사고, 대화, 풀리지 않는 의문들, 답 없는 질문들, 질문을 덮는 답변들, 그 사이를 매우고 강남대로 골바람을 타고 흐르는 공허, 도처에 널린 왜소감과 우월감, 열정 또는 의도된 도피, 성공, 실패라고 부르는 것, 모멸과 무례. 유명과 무명. 모래바람처럼 일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마는 그것들, 붙잡을래야 붙잡을 수 없는 것들, 머물지 않는 것들. 허상들. 그것과 나를 오래간 동일시 하지 않았던가.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것을 붙잡아두려고 나를 괴롭히고 내 주변을 황폐하게 하지 않았던가. 한때 나무로 우거졌던 울창한 숲이 메말라 사막이 되지 않았던가.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나인 것처럼, 때론 봄날의 산들바람이 나인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한때의 내가, 순간의 내가 영원할 것처럼 믿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비바람 치는 날엔 따뜻한 햇살을, 햇살 가득한 날엔 서늘한 가을바람을 바라지 않았던가. 그렇게 나는 상상 속 고통을 실재하는 고통으로 창조하고는 내 목구멍에 기어이 쑤셔 넣어 삼키지 않았던가. 불행이 날 얼른 떠나가길, 행복이 내 곁에 영원히 머무르길 염원하며 찰나의 불행이 내 전부인 것처럼 과하게 슬퍼했고, 찰나의 행복이 내 전부인 것처럼 과하게 오만 떨지 않았던가. 지나가고 오고, 속절없이 다시 가는 것들에 부질없이 속 끓이지 않았던가. 왔다고 도망가고 간다고 원망하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게 내가 만든 아상이고 집착이 아니었던가.
어쨌거나, 내 동료는 나보다 지혜로워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