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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Sep 11. 2023

부모와 여자친구 사이에서 마음 고생하는 친구에게

어른의 시작은 스무살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시작이다.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너는 이제 이걸 알 때가 되었다. 삶은 양자택일의 연속이고 그 과정에서 두 길 뒤에 서있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온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배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 중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의 손을 뿌리칠 것인가? 어느 길을 택하든 각각의 고통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 하지만 고통만 있다고 미리부터 겁먹지 말기 바란다. 행복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수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상상만으로 끔찍해보이지만 이건 단순히 부모에게 투정부리거나 반항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걱정, 그들의 오랜 가치 체계를 거스르는 것, 그리고 그에 응당 책임지는 것, 그렇게 오롯이 성인으로서 독립하겠다는 자세를 뜻한다. 부모는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 또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두려움에, 자식들에게 안전한 선택을 권한다. 부모의 애정어린 걱정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있어 안전한 선택이란 보통 사회적으로 쉬이 용인되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을 만한 것이 보통이다. "사회"라는 개념이 선택의 배경에 있을 때, 그 결과는 다수의 길이다. 다수의 길을 택하는 것은 분명 안전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안전함의 성취는 짧은 안도감 이후에 더 큰 불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아이가 물에서 허우적댈 때 손잡아주는 것은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아이가 수영을 배워서 잘 하게 되면 행복감을 준다. 행복한 사람은 더이상 안도감에 머물지 않는다. 안도감은 불안의 원인이 잠시 사라진 상태, 그러니까 불안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사소하고 일시적이며 조건부적 행복이다. 완전한 행복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수영을 배워야만 한다. 쉬워서 금방 사라지고마는 안도감이 아니라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완전한 행복의 길을 택해야 한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다시 돌아가서, 결혼 반대의 이유인 궁합에 대해 말해보자. 너희 어머니는 그것이 오랜 역사가 검증하는 빅데이터라고 말씀하셨다지만, 속지 마라. 그건 하나의 의견이고 관념일 뿐이다. 역사가 아무리 증명한다고 한들, 그것이 네가 온몸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그들의 의견일 뿐이다. 진리는 말하거나 들을 수도, 적거나 읽을 수도 없다. 진리는 오로지 체험될 뿐이다. 따라서 네가 경험한 것이라면 그것만이, 딱 그만큼만이 너의 진리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본 적 없는 온순한 아들로 살아온 네게, 부모의 의견은 종종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네가 살아보지 못한 것을 부모와 부모의 부모가 살았다고 주장하니, 그 앞에서 네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의 왜소한 투정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너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무엇이 너의 진리인가? 부모의 견해가 정말 진리인가? 세상의 견해가 정말 진리인가? 네가 경험하고 입증한 진리가 아닌, 남들의 견해에 네 일생일대의 결정을 의탁할 것인가?



부모의 말을 믿고 여자친구와 헤어진다고 가정해보자. 넌 아마도 부모를 오래간 원망할 것이다. 미움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미움은 철저히 시간 낭비이고 기운 낭비다. 부모는 네 선택에 기뻐하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머잖아 네 불행에 미안해지고 그들마저 불행해질 것이다. 이 선택으로 누가 행복해지는가? 다만 이 결정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서 너 역시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이또한 옳다.



반대로 부모를 거역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널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너와 네 부인은 결혼 생활의 기쁨을 하루라도 빨리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네 부인은 널 고마워할 것이다. 부모 대하는 네 마음에 속끓는 불편함이 오래 지속되겠지만, 그건 결혼해서 잘 사는 것으로 누그러질 수 있다. 이 선택으로 당장 부모는 불행해지지만 너와 네 부인, 최소한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두 사람과 부모 모두가 불행한 것보다 두 사람만이라도 행복한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행복할 기회라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진정한 성장의 시작은 반드시 가까운 누군가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기 마련이다.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무언가를 배반해야만 한다. 쓰고 아프고 또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째는 조금 나아진다.



잊지 마라. 내 경험에 비추어 진실되게 썼으나 이 글 역시 내 견해, 내 진리일 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옆집 개짖는 소리처럼 여기기 바라며 용기내어 네 진리를 찾길 바란다. 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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