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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호 Sean Han Jul 17. 2023

한창 인형이 좋을 나이

반쪼가리 자작: 인형극의 진수를 보여 주다

작품: 반쪼가리 자작(Il visconte dimezzato)

원작: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연출: 박성찬 of 창작조직 성찬파

장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관람 일자: 2022.09.12


2023.8.4-13
창작조직 성찬파의 '반쪼가리 자작'이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으로 돌아옵니다.
출처: 아르코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메다르도 자작의 조카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자작'의 의미가 궁금해 찾아보니 공작, 후작, 백작, 남작과 같은 귀족 작위였다. 자작은 백작 다음인 네 번째 등급. 그리고 자연스레 생기는 궁금증은 '반쪼가리'의 의미였다. 이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아 추측해보는 데 많은 노력을 쏟진 않았다. 자작이 너무 슬퍼서 심장이 반으로 쪼개졌다는 걸 표현한 건가? 사람답지 않아서 반쪽짜리라는 건가? 바로 궁금증을 해소해 주자면 작중 자작의 몸이 물리적으로 반쪼가리가 된 것이었다. 한쪽은 절대 악, 다른 한쪽은 절대 선을 상징했다.


디자인이 참 예쁜 국립극단 책자

    연극 시작 5분 전쯤 도착해 자리에 놓여 있는 안내책자를 집어 들고 착석했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연극 시작 전인데도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광대 역할로서 주인공인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를 펼치기 전 몸을 풀고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객이 입장하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하는 배우들을 보니 신기하고 특이한 연출이라 느꼈다. 곧이어 나온 공연 전 안내 방송에도 반응하는 배우들의 장면까지 더할 나위 없이 재밌는 시작이었다.


    연극이 시작되자 방금까지 몸을 풀던 광대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같은 배우들이 '메다르도 자작'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 등의 역할을 소화했다. 이처럼 총 6명의 배우가 극을 꾸몄는데 같은 배우가 여러 역할을 맡아 연기를 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그만큼 배우들의 몰입도와 연기력이 뛰어났다는 뜻이겠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반쪼가리 자작'을 연극 형태로 처음 접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양한 연출 방식이었다. 자작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인형이 등장했고 팔다리 관절을 여러 명의 배우가 제어했다. 인형이 달리다가 입가를 닦는 모습부터 칼을 들고 결투하는 모습까지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대포를 맞은 인형은 슬로 모션으로 뒤로 밀려나며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이후 자작의 각 반쪽을 연기한 배우들은 손수건으로 얼굴 한쪽을 가리고 목발을 짚은 채 한쪽 몸만을 보이며 연기했다.


    그림자극이 쓰이기도 했다. 착한 반쪽이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선행에 관한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이 유쾌한 그림자극으로 풀어냈다. 선함과 지루함은 서로 비교 불가 대상이긴 하지만, 이야기 후반에 나오듯 극단적 선함이 지루함을 유발할 수는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짧게 빛과 그림자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자작이 선과 악으로 분리되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 역시 빠른 재현을 통해 익살스럽게 보여 주었다.

백성희장민호극장


    예전에 대학의 연기 관련 학과에선 어떤 수업을 듣는지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인형극 과목이었다. 인형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 인형극도 아동극에 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쪼가리 자작'을 관람하고 나서 이러한 편협한 생각을 경계하게 됐다. 이 작품에서 선보인 인형극은 전혀 유치하지 않았고 환상 문학의 요소를 재치 있게 풀어냈으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까지 고스란히 전달했다.


    주제 역시 흥미로웠다. 평소 우리들이 말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종종 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선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이러한 행동을 사람들 눈앞에서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을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몸에 밴 듯 남 앞에서 선행을 베풀던 사람이 뒤에서 한번 선행을 소홀히 하면 악한 면이 부각된다. 결국 인간은 모두 선한 면과 악한 면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작품에서는 '온전한 인간'이라 칭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함은 완벽함을 뜻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 결말 부분에서 말했듯 선과 악은 행복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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