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The Myth of Repressed Memory: False Memories and Allegations of Sexual Abuse)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
연출: 오재균 of 극단 이유는 있다
장소: 동숭무대소극장
관람 일자: 2022.10.11
"본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한 대로 보는 거지. 기억이란 게." -이도석
흔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연극 시놉시스를 모른 채 극장에 도착했다. (나의 랜덤박스 관극법이다.) 지하에 위치한 극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던 하트 모양 틀 안에 각 등장인물의 얼굴이 찍힌 포스터가 배열되어 있었다. 작품 제목이자 동음이의어인 '부정'은 아버지의 사랑을 뜻하는 단어일 거라는 1차 추측을 하며 극장에 들어섰다.
공연 시작 전 가장 눈에 띈 것은 극장 내부였다. 작은 정사각형 무대의 두 면을 관객석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8'자 모양의 구조물이 무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봤던 극장들보다 협소했던 만큼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등장인물은 총 4명으로 적은 편이지만 다루는 소재는 꽤나 다양했다. 먼저 공연 시작 전부터 벽에 조명으로 비춘 고양이는 작중 형사인 이도석의 여대생 딸 이묘희의 방어기제를 유발하는 생물이었다.(고양이 '묘'희) '묘'로부터 시작되는 극적 갈등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소재인 기억 왜곡과 근친 성추행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이외 구성된 인물의 성향 차이만으로도 극적 갈등을 자연스레 자아냈다.
묘희는 불면증 때문에 찾아간 심리상담사 진영에게 자신이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토로한다. 이를 알게된 아버지 도석은 그런 기억이 없다며 절망에 빠지고, 마찬가지로 의아를 느낀 후배 형사 김인성은 직접 진영을 찾아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진영은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묘희가 도석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거라 확신하며 대응한다. 내용만 들어도 벌써부터 각 인물의 주관과 고집 느껴지지 않는가?
묘희가 묘를 등지고 있는 묘한 장묘온
여기서 다시 '8'자 모양 무대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극심한 고통이나 죄의식을 느낄 정도의 기억 왜곡과 합리화를 하며, 발생한 사건의 진실 주위를 뫼비우스 띠에 갇힌듯 빙글빙글 돈다. 즉 실체 없는 진실이 인물 간 갈등을 고조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기억을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몇 년 전 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추억에 잠긴다. 일기를 매일 적어 놓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파악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난 귀찮아서 매일 쓰진 않지만 이따금 느끼는 파도같은 감정은 적나라하게 기록해 둔다.)
하지만 기억을 기록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억이란 녀석이 믿을만 한 게 못 되어서가 아닐까? 많은 정보를 소화해야 하는 바쁘디 바쁜 일상 속 우리 모습만 보더라도 머리가 빼어나게 좋지 않은 이상 기억을 왜곡하기 십상이다. (물론 좋은 머리를 활용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도 허다하다.) '네가 그때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난 이렇게 말했지!'하며 친구나 가족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지 않은가? 실랑이 사유가 사소하다면 다행이지만 자신의 딸이 묘희처럼 큰 오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를 한다면 그 기억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극 중 의지할 곳이 필요해 서서히 종교에 빠지는 묘희의 사례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시사점은 믿음과 의존의 차이, 그리고 그것과 진실의 연관성이다. 믿는 대상에 의존할 순 있지만 단순히 의존하는 대상을 믿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종교인은 저마다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한다 믿지만, 한 종교를 수많은 종파가 이루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믿는 것이 진실일 때도, 논리적 오류가 없는 것이 진실이 아닐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