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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Dec 10. 2021

나 술 잘 못 마시는데,
가끔 그게 그렇게 필요하다.

난 술을 잘 못 마신다.

얼굴도 빨개지고 너무 많이 마시면 심지어 숨도 잘 안 쉬어진다. 

그래서 평소에 즐겨하지도 않고 딱히 찾게 되지도 않는데, 가끔 그게 그렇게 필요한 날이 있다. 

꼭 어떤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거나 미치도록 우울해서는 아닌데, 왜 그런지 알코올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꼭 가까운 지인을 불러내서는 결국 소주를 두병쯤 마셔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아무래도 나는 "미치도록 솔직하고 싶은 날" 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맨 정신으로는 미치도록 솔직하지는 못하지 않은가. 미치도록이 포인트다.


이렇게 글을 쓸 때도, sns를 할 때도,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진짜'를 꺼내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 혹여 사회성 결여된 사람으로 보일까, 누군가에서 상처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가려진 그 '진짜 마음'이 쌓이다 쌓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일명 알코올 데이를 외치게 되는 것 같다. 


난 교회도 다니고, 가끔 봉사활동도 하고, 종종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도 건넨다. 근데 사실 그보다 훨씬 모나고 투박한 부분이 더 많다. 난 사실 사람들 얘기에 공감하기 귀찮아할 때가 많고, 승부욕이랑 질투는 또 더럽게 세다.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반짝이는 표면이 달의 극히 일부인 것처럼,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그런 투박한 표면들이다. 그런 나의 투박함을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채 그저 툭 하고 꺼내놓을 용기. 그런 용기를 아직 난 알코올의 힘에 빌리는 것 같다. 


알코올에 진짜 취해서 그런다기 보다도, "술에 취하면 그럴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보호막 삼는 건데 충분히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 같다. 근데 비겁하던 뭐던 일던 살고 봐야 하는 문제 아닌가. 당장 그날 진짜 마음을 꺼내지 못해 질식하는 것보단 알코올에 취해 숨쉬기 어려운 게 낫다고 생각한다. 

뭐, 좀 더 자라다보면 더 나은 어른이 될지도?!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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