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사실이겠지만, 나는 빵을 정말 자주 산다. 정확히는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꼭 식빵이나 디저트 빵을 하나씩 사 온다. 물론 내가 빵순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난 원래 바게트랑 쌀빵만 좋아한다. 내가 하루는 식빵 또 하루는 디저트 빵을 사 오는 이유는 그게 나의 소심한 애정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새벽 5시에 출근을 하는데, 아침은 밥보다는 빵을 선호한다.
엄마는 카페인에 약해 오후에는 커피를 못 마시기 때문에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 중요한데, 그때 항상 함께 먹을 디저트를 찾곤 한다. 아주 오래된, 아주 꾸준한 일상의 한 부분이다.
내게도 아침은 언제나 특별하다. 아침에 내리는 커피 향이 어떤지, 잠이 덜 깬 채 틀어놓은 노래는 무엇인지, 오늘은 커튼이 햇빛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 등등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차이는 하루의 색깔을 결정하는 "첫 방울"이다. 하루 일과를 보내면서 여러 색이 섞인 채로 집에 돌아오는 작은 팔레트가 하루의 색깔 같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여러 색이 무분별히 섞여 거무틔틔해져 돌아오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밝은 색들만 모여 파스텔 톤으로 퇴근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무슨 색으로 마무리되었건 다음 아침엔 다시 새하얀 팔레트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을 가장 좋아한다.
다시 "첫 방울"이야기로 돌아가서, 팔레트에 색을 섞기 시작할 때 처음 고르는 색깔은 최종적으로 어떤 색이 될지 좌우하는 중요한 색이 된다. 엄마 아빠의 첫 방울이 될 색을 내가 정할 수는 없지만 그저 한번 더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 되면 단골 빵집에 들른다. 이미 정해진 메뉴인데도 괜히 새로운 메뉴가 나왔나 쓱 흝고서는 식빵을 하나 집는다. 가끔은 특별하게 옥수수 식빵이나 밤 식빵을 사가기도 하는데, 보면 아빠는 항상 기본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곤 근처 유명하다는 디저트 집을 찾아본다. 빵이랑 다르게 디저트의 동일 메뉴는 쉽게 질리는 편이라 새로운 맛집을 찾아보곤 한다. 마음에 드는 지점이 보이면 들러서 딸기나 라즈베리 같이 상큼한 과일이 들어간 디저트를 찾는다. 그렇게 양손에 하나씩 사서 조용히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한결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끔은 "이거 진짜 유명한 데서 사 왔는데~"로 시작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메모에 조잘조잘 작은 편지를 써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냥 잘 밀봉해 놓고 표시만 정확히 해둔다. 나는 오글거리는 표현을 워낙 못 참는 데다 직접 애정 표현하는 걸 어색해한다. 그래서 "나 빵 사 왔어!"라는 말이 내겐 소심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내일 아침이 한결 밝길, 한결 산뜻하길 바라는 마음. 더더군다나 그런 마음을 알아주던 모르던 크게 상관없다. 그저 내일 아침 아빠가 집을 나설 때, 엄마가 커피를 내릴 때, 이 작은 사랑마음에 조금이라도 든든하다면 그리고 그래서 따뜻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