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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천지 Oct 15. 2021

일개미의 불안

취업을 했고 매달 근로 소득도 발생하는 어엿한 근로자이다. 다만 상용이긴 하나 일용과 별다를 바 없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상용직으로 전환 검토조차 되지 않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는 근로자이다. 우리는 이들을 기간제근로자라고 부른다.

제도의 사각지대 안에서 정규직 철밥통이 되기 전까지, 20대 기간제 근로자는 계속 불안에 떨어야만 한다. 특히,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은 일상에도 도사리기 시작한다. 눈에 거슬리던 정도의 불안은 점점 더 형태를 부풀려 나를 검열하고 경쟁하기 시작한다. 계약이 만료되고 난 후 찾아올 공포감과 중압감을 조금이라도 일찍 탈피하고자 내일 당장 잘릴 걱정을 뒤로 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며 또 다른 불안에 떨고 있는 취준생들과 함께 경쟁 속으로 뛰어든다. 내가 고작 일하는 개미들 틈 속에 섞이고 싶어서 이렇게 아등바등해야 하는 건지 현타가 오다가도 더 이상 발만 걸치고 있을 수는 없어 다시 나를 다그치고 등 떠밀기를 반복한다.

스펙은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더 채워야 하는 건지,

한국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해야 하는 건지,

남들은 어떻게 철밥통이 되는 건지,

이력서에 또 다른 한 줄 더 쓰기 위해서 나는 또 뭘 준비해야 하는 건지,

수백 번 고민만 하다가 좌절하거나 아니야, 뭐라도 해보자 해서 학원이든, 인강이든 등록하는 순간 또 다른 일이 생긴다. 나는 근로자가 하는 일, 취준생이 하는 일 두 개를 동시에 해야만 하는 일 중독자다.

저는, 일을 통해 인정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의 가치를 찾고 싶은 게 아니고, 일은 살아가는 수단 중 하나인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로 있고 싶은데요.. 더 이상 쓰고 버려지고 싶진 않아요. 필요에 의해서 잠깐 쓰는 사람 그만하고 싶어요. 내가 상용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됐다고 해서 나를 당신들이 말하는 취업자 수에 넣어 실업률을 줄이진 말아주세요. 나는 또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해야만 하는 그 끔찍한 길을 배회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 일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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