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하늘 Oct 23. 2021

공황장애 완치 후기 - 아이와 단 둘이 홍콩 여행

두려웠지만 엄마이기에 가능했던 ‘공황장애 극복’ 이야기

[공황장애 완치 이야기 - 2017년 가을 단약 후 2번의 예기 불안과 1번의 공황 발작 외에는 더 이상의 공황 증상은 겪지 않고 있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

무증상 3년 차의  공황장애와 싸우던 시절 회고록


중증 공황장애 환자
극한 도전기
- 7살 아이와 단 둘이 떠난 홍콩 여행
(feat. 2017년)



 누운 자리에서 숨 쉬는 것조차 불안했던 지난날.

 8년 동안 원인 모를 마음의 병으로 하루하루 세상에서 멀어지고 어둠 속 깊은 수렁으로 녹아가던 차에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었다. 5개월쯤 되던 때였던 걸까? 선생님께 아이와 단 둘이 홍콩 여행을 가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여행 후에 다녀와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환자분이 여행을 못 가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환자분 정도의 공황 발작이 오는 분들의 경우에는 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공중을 몇 시간씩 비행해야 하는 것을 회피하거든요. 또한 여행이 즐거웠다니 놀랍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그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던 선생님의 얼굴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2017년 봄, 비행기에서 바라 본 하늘



 나에게는 현재 나를 살게 한 이유인 두 명의 딸이 있다. 그리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는 세 번째 따님도 있고.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자식 없지마는 특별히 나에게는 ‘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바로 첫째 딸. 본의 아니게 공황장애로 아이를 두렵게 하기도 했고, 수술 후 죽을 고비를 넘긴 모습을 보여 준 때도 있었고,  누구보다 젊은 엄마임에도 과로로 디스크가 파열되어 꼬꼬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은 채 걷지도 못하는 데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7개월을 보여 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아플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둘째보다 더 큰 것 같다.

 소중한 첫째 딸과는 정말 특별한 추억이 있다. ‘단 둘이 떠난 첫 해외여행’. 이 여행으로 나는 공황장애 치료의 큰 전환기를 맞았다. 첫째가 7살, 둘째가 17개월 무렵 나는 한 참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고 있던 중에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 홍콩. 하루도 아닌 3박 4일의 긴 여정을 다녀 올 계획이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4일 차 저녁에 돌아오는 꽉 찬 일정을 안고.

 당시 나는 자다가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도 온몸이 다 젖을 정도의 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하는 정도의 공황발작 증세를 하루에도 몇십 번을 겪을 때였다. 극심한 발작이 일어날 때면 하얀 약 통에 든 작은 리보트릴 반 알을 먹어가며 견디던 때였다. 그런 내가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절대 이 병으로 미치거나 죽지 않는다.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나에게 온몸으로 체험시키고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가 7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일반적인 가정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여행”이라는 선물을 해 주기가 어려웠다. 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2017년 5월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홍콩은 덥고 습했다.


 당시 나는 병원에 가지 않는 기간 동안에 자주 들르던 네이버 카페가 있었다. 공황장애 환우 수만 명이 가입한 카페였다. 그곳에 아이와 단 둘이 홍콩을 간다고 적었더니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습하고 더운 기후’인 홍콩의 기후 상태 때문에 증상이 심해질 수 있음을 염려하는 글을 전하는 분도 계셨다.

 공황 발작은 너무 추울 때보다 더울 때, 즉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는 요건이 만들어질 때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심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든다던지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한증막에 들어가서 숨을 못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수 있었다. 실제로 나도 ‘기후+긴장도+예기치 못한 각종 당혹스러운 이벤트’ 들 때문에 불안이 슬쩍슬쩍 찾아왔었다. 하지만 엄마가 가끔 무섭게 화를 내기도 하고 불안한 모습을 내 비추기도 함에도 사진 속 모습처럼 환하게 웃어주며 즐기는 내 아이를 보며 굳은 얼굴이 조금씩 풀어져갔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집념 때문에 더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불안했다. 미치도록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진짜 불안인지, 아니면 기후 때문에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신체 증상인지. 그리고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찬찬히 일지를 써 보았다.


홍콩 도착 후 2일 차 새벽, 두근거림으로 잠에서 깼었다.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일 무렵 약을 만지작 거리며 적은 일지.


 홍콩 도착 후 무사히 첫째 날을 보내고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잠에서 깼었다. 나는 당시 통잠을 자지 못했었다. 밤 사이 10번은 넘게 깨다가 해가 뜰 무렵 새벽이 되면 기가 막히게 잠에서 깼었다. 그리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으며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었다. 홍콩 여행 전에 혹시라도 내 불안이 통제되지 않을까 봐 응급실 가는 방법까지 알아 둔 나.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들고 온 공황장애 환우의 극복 일지 책을 읽다가 내 증상을 들여다보며 일지를 써 내려갔다. 비상약으로 가지고 온 리보트릴 한 알을 만지작 거리면서 찬찬히 관찰하며 꾹꾹 적어 내려갔다. 한참을 적으면서 다시 아이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눈물이 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 훗날 엄마가 이렇게 병을 이겼노라고. 너로 인해 엄마는 원인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이겨냈노라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병원을 찾았고,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 선생님께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정말 최고였어요!
너무 즐거웠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결국 저는 미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네요.

저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황 발작 또는 예기 불안으로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통제해 나간다면 이 병은 절대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무모해 보인다면,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서 조금씩 조금씩 바로 앞에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 보세요.

 할 수 있어요. 심장이 뛰는 것이 두려워 카페인이 든 것이라면 물이라도 안 마셨던 지난날의 저는 온데간데없이 매일 커피를 즐깁니다. 지금보다 행복 해 질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도 절대 이 병으로 미치거나 죽지 않아요. 저도 이겨냈는걸요. 파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