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후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의 의미.
누구에게나
마음의 병이 찾아올 때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신호가 있다.
나에게 한 가지 의미를 담은 독특한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말 그대로 습관이기 때문에 이 행동이 나에게 주는 신호를 가끔 빠르게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습관은 바로,
외출 후 오랜 시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고 집안에서 어정쩡한 생활한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리고 찝찝한 것을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기를 내가 아주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에서는 집에 들어왔을 때 해야 하는 행동들을 차곡차곡 빠릿빠릿하게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마치 집에 도착은 했지만 조만간 다시 나가야 할 것만 같이 아직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처럼 외출복 차림 그대로 집안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불안하게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습관은 어디에서 온 걸까?
어릴 적 나는 자주 집에서 쫓겨나곤 했다.
나의 부모는 1세대 맞벌이 부모, 워킹맘 세대.
엄마라는 존재는 집에 가면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서 집에 가도 엄마가 없는 시대의 전환기에 내가 자랐다.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조부모님과 살던 내가 8살 어린 나이에 꿈에 그리워하던 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시댁살이만큼이나 녹록지 않았었다.
나의 부모도 나도. 꿈에 그리워하고 꿈에 그리던 상상하던 서로가 아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갖가지의 이유로 매를 맞기도 하고 벌을 서기도 했지만, 그중 가장 무서웠던 것이 ‘어두운 밤, 집에서 쫓겨나는 것’.
갑자기 화가 난 엄마가 나를 언제 쫓아낼지 모르고,
갑자기 화가 많이 난 아빠를 피해서 언제 집 밖에 나가야 할지 몰랐던 그때.
불안한 내 마음을 나름대로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옷을 입고 자는 것.’이었다.
저학년 때는 추운 겨울,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쫓겨나기 일수였기 때문에.
한파가 부는 바람 속에서도 나시에 팬티만 입고도 쫓겨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맞은 찬바람은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안정적으로(?) 갖춰 입고 쫓겨나는 것이 좋다는 판단하에.
갈등이 생길 것 같은 날은 아무리 보일러 때문에 더워도 점퍼까지 벗지 않은 채,
잠들기 전까지 방에서 불안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적이 숱하게 많았다.
그때는 내 부모도 나도 미성숙했기에.
아무리 내 부모라도 내가 겪은 일을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도 공부하지 않으면 그럴 수 있구나.’하며,
지금은 나에게 내가 필요한 모양의 부모 모습을 보여주는 내 엄마를 보며 어릴 적 뼈에 박힌 아픔들이 치유가 된다. 이래서 부모가 장수하는 것이 자녀에게 복인 것인가.
그런데…
분명 과거에 내가 겪은 일들이 치유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옷을 갈아입지 않는 습관은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거나 무언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을 때면,
집에 도착해서도 잠이 들기 직전까지 손 외에는 씻지도 않고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는다.
이런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참 오래도 걸린다.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때는 정말 내키지 않아도 옷을 갈아입어본다.
그러면 내 마음이 ‘집’이라는 공간에 진짜로 정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긴장도 그제야 풀게 된다.’
도대체 왜?
나는 아직까지 이 습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언제 이 습관이 나타나는 걸까?
분명 힘든 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도대체 어떨 때 나타나는 건가?
그 이유는
내가 ‘눈치채지 못해서이다.’
내가 지금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집’이 불편하고
그 공간에서 기대고 의지 할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
‘외로울 때’
그 증상이 몇 날 며칠 지속된다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다들.. 그런 신호..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