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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Dec 23. 2024

힘들 때 깨닫게 되는 것

한강의 서시와 함께...

서시

        - 한강 <서랍을 저녁에 넣어 두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힘든 시기, 가뜩이나 추운 마음에 겨울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따뜻한 온기가 더없이 필요한 시간 속에 누군가의 체온을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의 마음이다. 따뜻한 손으로 차가워진 손을 마주 잡아주길 바라고 있지만 이제야 말로 자신의 차례일 수 있다. 이미 꽁꽁 얼어붙어 체온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품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안아주어야 할 차례인 것이다. 결국 그토록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던 인생의 모든 힘든 부분들이 눈앞에 닥쳐왔다. 후회를 통해서 이것을 제대로 겪어내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금 편하게 살고 싶어서 했던 노력들이 도리어 인생의 방해물이 되어 더욱 어려운 삶의 길을 걷게 했다. 인생을 부정하고 다르게 살 것처럼 행동했던 모든 어리석은 행동들 역시 내가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던 미래를 향해 돌아가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하려 했던 무의미하지만 마냥 또 그렇지만은 않았던 시간들의 의미를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수많은 뜨거운 심장들이 모여 서로에게 온도가 되어주는 것을 보며 잠시나마 자신의 차가운 손을 잊게 되었다. 마음으로나마 두 손을 그들의 심장에 얹어 온기를 보태고 싶다. 언젠가 조용히 끌어안고 시간을 그대로 인정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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