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다고요
타고 다닌 지 오래된 차가 있습니다. 처음 갖게 된 첫차이자 새 차(지금은 낡은 차이지만)였습니다. 어떠한 차도 소유해 보지 못했던 그전에는 차에 열광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차가 생기자 열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차에 대해서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생겼고 새 차에 어디 하나 흠집이라도 생길까 늘 살피고 조심조심 운전했습니다. 그러다 서툰 운전으로 주차하면서 살짝 옆이 긁히게 되거나 옆차로 인해 문콕을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 외관에 살짝 긁힌 자국들은 사실 운전하는 데 있어서나 차가 제 기능을 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 작음 흠집들은 차보다는 정작 제 마음속에서 긁힌 자국을 더 크게, 더 치명적인 상처로 보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로 정비소 등으로 가서 다시 매끈하게 만들거나 교체하는 등 필요도 없는 과한 대처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를 소유하고 운전한다는 일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특히 교통발달이 덜 되어 있는 지역의 경우 차는 편리한 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제가 사는 지역이 그렇습니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차에 긁히거나 흠집이 나게 되는 것에 무뎌지게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흠집은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차를 소유하는 것이 조금은 덜 피곤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남이 부주의하게 제 차를 긁거나 박는 일에는 화가 안나는 것은 아니지만 자잘한 경우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 제정신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것투성이 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을 보내왔던 세상과는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가고 있음에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분리되어 살아가는 듯 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젊은이들과 나이 든 사람들,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학생과 직장인... 모두가 자신의 세상 속에서만 살아갈 뿐입니다. 서로에 대해서 크게 관심도 없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속 거주민들로써 때로는 전혀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늘 마주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다른 종족들과의 만남이 설레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왜 저럴까 싶은 말과 행동들로 인해 누구든지 긁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일, 자주 일어나게 되는 이러한 긁힘과 흠집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운전을 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운전하는 데 있어서 전혀 상관없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되면 하지 않아도 될 감정소모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제 자신이 통제할 권리는 없습니다. 일부러 나를 긁으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그냥 운이 없어 생기게 된 작은 흠집 정도로만 취급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무례를 그 가치 이상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차를 운전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해 원하는 바를 이루면 그뿐입니다. 자동차에 생긴 자잘한 긁힘 들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더 편하게 마음 놓고 운전하게 만들어 주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생긴 흠집들에 하나가 더 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운전하다가 긁히게 되는 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인 것입니다. 물론 언젠가 제가 로또가 당첨되어 어마어마 한 차를 가지게 되면 아마도 흠집에 좀 예민해질 수도 있겠지만 또 반대로 그 정도의 재력을 가지게 되면 그런 작은 흠집 정도는 제 마음에 어떤 생채기도 내지 못할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역시 여유 있는 마음(여유 있는 재력처럼)이란 가장 큰 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