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나 싶어요.
저는 제가 진짜 느린 편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운전도 느리고 행동도 생각하고 난 다음에 하는 편이라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신중하다고 나름 자부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도저도 결정을 잘 못하는 결정장애처럼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게 될 때 뒤처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업무에 숟가락만 얹어 가는, 그런 직장인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서는 미리 업무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입직원이 미리 업무를 숙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배워가는 중에 있는 신입의 경우 계속해서 사수에게 질문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을 배울 때 업무에 있어서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만든 매뉴얼은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직관적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얼마 배우지 않은 몇 개의 업무일지라도 매뉴얼의 순서대로 하기만 한다면 사수에게 다시 질문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확인을 받아야 했지만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정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일하는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진행하느라 오히려 약간 느린 편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도 좀 느린 제 업무의 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저로써 당연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저보다 느린 강적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런 직원을 동료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직원은 저보다는 이 분야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신입 아닌 신입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저보다는 손이 느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입인 저에게 또 다른 신입을 붙여줄 수 없어 경력직을 뽑은 것인데 저보다 느린 업무속도라니! 그 직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제 감정은 혹시 전 사수가 저를 보면서 느꼈던 것이었을까요?
저는 제가 만들어두었던 매뉴얼도 그 직원에게 그냥 넘겨주었습니다. 제발 미리 보고 업무숙지를 하여 조금이라도 업무의 속도가 높아지도록 하여 함께 일하는 데 있어 지장이 없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또 그분 나름대로의 업무의 순서와 속도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매뉴얼은 역시 힘들게 만든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아는 것이고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매뉴얼은 그저 다른 직원의 잔소리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나 봅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물어보고 해 봤지만 여전히.... 두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완료되지 않은 업무들은 모조리 제가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업무처리가 이제는 그냥 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직원이 머리를 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상대적으로 성격이 급한 것처럼 보이는 저는 업무가 멈춰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직원에게 말하기보다는 그냥 제가 처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제가 하는 업무가 많은 것은 그다지 불만이 아닌데 일을 하면 할수록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 광범위하게 늘어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을 많이 하면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무래도 더 많아질 것이고 그러다가 진짜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이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1년의 경력도 되지 않은 신입이기 때문에 새롭게 보는 서류나 진행해야 하는 업무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수가 아닌 직장 상사는 제가 하지 못하는 다른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냥 제가 알아서 문제없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확실히 성격이 느긋한 사람보다는 급한 사람이 불안해서라도 일을 그냥 보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은 하면 할수록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격 급한 사람 앞으로 자꾸만 쌓이게 됩니다. 느긋한 사람은 그래도 불안하지 않은가 봅니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함께 일하는 직원이 좀 힘내서 일하는 속도를 높여 비슷하게 일하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 서로 크로스체크가 되어 업무에 있어 보다 안심하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말연시... 이래저래 불안하고 예민한 데다가 성격까지 급한(상대적으로) 사람의 내년 희망사항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