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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Jun 09. 2024

개선문과 피아니스트

- 올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되는 해입니다!

[대문사진] 프랑스 파리 개선문 나폴레옹 1806년 착공, 루이 필립 1836에 완성! 높이 50 폭 45 미터, 프랑수아 뤼드 부조! 개선문 주위로 12거리, 개선문 정면과 콩코드 과장을 잇는 거리가 샹젤리제 !



2차대전 당시 1944년 6월 6일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되었고, 올해는 80주년 되는 해입니다!



<개선문>과 <피아니스트>는 2021년 12월에 브런치에 발표한 글이며  오늘 다시 올립니다!



파리의 고혹적인 가을은 며칠째 내리는 실 그물 같은 비에 촉촉이 젖어들어 화면에 도드라지는 입체영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잿빛 하늘이 계속되는 늦가을과 겨울엔 바쁘게 지내느라 읽지 못했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수 있어 좋다.


영화나 소설은
간접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무척 좋은 동반자다.
그렇기에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책과 영화를 즐겨 본다.
특히 ‘추억의 영화’ 혹은 흑백 필름들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아주 어릴 때 모아둔 트럼프 크기만 한
영화 광고 카드들은 비록 낡고
정교하게 인쇄된 것이 아닐지라도 정겹기 그지없다.
개봉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영화를 감상할 때, 내 나이나 심리상태 혹은 계절
그리고 시대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같은 영화라도 볼 때마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독일 작가 레마르크(1898-1970)가 쓴 <개선문>과
브와디스와프 슈필만(1911-2000)이 겪은 실화를
책으로 출간한 <피아니스트>는 각각 영화로 만들어졌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유태인이고
1938-1944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비슷하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1차 대전을 배경으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썼고, 2차 대전을 소재로 <개선문>을 집필했다. 독일인이면서도 프랑스 파리 거리와 분위기, 무엇보다 주인공인 유태인 라비끄 심정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2002년 프랑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으로 폴란드 출신 유태인이며, 1939년 당시 바르샤바 라디오 방송국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슈필만이 겪었던 일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감동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2002년 겨울, 극장에 몇 차례나 가서 <피아니스트>를 봤다. 볼 때마다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팠는지 지금도 가슴 언저리가 저릿하다. 두 번째 보러 갔을 때, 내 옆 자리에 앉아있던 프랑스 할머니(어쩌면 유태인이었을지도 모른다.)도 나처럼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슈필만이 연주했던 쇼팽 곡은 그 뒤로 <피아니스트> OST로 제작되어 판매되었고, 나는 한동안 그 시디를 사서 좋아하는 분들께 드리며 <피아니스트> 영화를 알리려고 했었다.


<개선문>과 <피아니스트> 주인공들이 살던
당시 유럽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들이 득세하고 있던
암흑, 공포, 잔학의 시기였다.

시대적인 암울함,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
종교와 사상으로 대립되는 것은
오늘 이 순간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 시대 사람들 참 끔찍하고 혹독한 상황에
처했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전쟁이란 거대한 연기 같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수백만 명이 고통당하고 죽어갔다는 것에 전율하면서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개선문> 주인공 라비끄는 파리에 숨어든 불법 체류자로 살아간다. 그를 짓누르는 여러 요인 중 최대 걸림돌은 그가 유태인이며 신분증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므로 늘 불안하고 떳떳하게 자기를 내세울 수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라비끄가 불법 체류자임을 알면서도 인간적 신뢰를 갖고 도와주는 의사 베베르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라비끄의 상황을 이용하고 돈을 갈취해 자신의 이익만을 채우는 앙드레 뒤랑 같은 야비한 유형을 볼 수 있다.


라비끄가 거리에서 죽어가는 여인을 구해주었음에도 감사 인사는커녕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은 그에게서 불법 체류자 냄새가 난다며 집요하게 신분증을 요구해서 결국 추방당하게 만든다.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했는데도 흉악범 취급을 받으며 어이없고 곤란한 상황에 몰린 라비끄 심정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영화 <피아니스트>에도 등장한다. 당시는 가공할 히틀러 치하였으므로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게토에 갇히거나 끔찍한 죽음을 당하는 수용소로 끌려가는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폴란드 방송국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슈필만은 동료가 빌려준 집에 은신해 있었다.


그는 굶주림으로 인해 먹을 것을 찾다 그릇을 떨어뜨리고, 사나운 이웃집 여인은 그 소리에 옆집 문을 두드린다. 인정 없는 여자는 유태인으로 보이는 슈필만을 보자마자 거만한 표정으로 신분증을 내놓으라 윽박지르며 그를 더러운 짐승 대하듯 한다.


여자는 결국 유태인이 있다고 소리 질러서 허기진 그를 독일군이 득실대고 찬 바람 부는 거리로 몰아낸다. 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소설이나 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나 수없이 만날 수 있기에 더욱 씁쓸한 느낌이다.



내가 <피아니스트> 주인공 슈필만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유태인을 이끈 투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며,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강인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나들면서 살아남은 이유 때문도 아니며, 독일 사령관을 감동시킬 만큼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그의 재능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죽음의 열차’ 앞에서 가족과 헤어질 때
세상의 끝에 선 듯 절망하는 그에게서,
 
폐허가 된 거리를 아이처럼 울면서 걷는 그의 모습에서,

벽돌을 나르다 떨어뜨려 독일군들에게 불려 갈 때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과 본능적인 무력함을 보이는
그에게서 연민을 느꼈다.
피아노를 치던 재능 있는 손은
무지와 폭력만이 이글대는 세상에서는
한낱 쓸모없는 도구일 뿐이고,
예술가 역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힘없고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라는
절망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몸을 숨길 수 있었지만
밖에서 문을 잠근 곳,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공간에서 숨죽여 지내며
하염없이 창 밖만 바라보는 슈필만에게서,
독일군 사령관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후
절망과 허탈 그리고 수치심으로
다락방에서 흐느껴 우는 그에게서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혼자일 때 인간은 지극히 나약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과 공포 앞에서
비굴해 보일 만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극도의 굶주림 속에서
그 누구라도 슈필만처럼
처절한 몸짓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만일 내가 그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
내 이웃은 어떻게 행동할까?
반대로 내 이웃이 슈필만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애와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장교, 마음이 따뜻한 그는 극도의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슈필만을 도와준다.



길을 걸으면서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벤치에 앉은 동안에도 폴란드와 유럽에 있던 게토 안팎 사람들의 무심함과 점령 독일인들의 오만함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끼며 전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엔 언제나 그랬듯이 정의롭고 양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잦아든다.


<개선문>의 베베르나 <피아니스트> 슈필만 연주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도와주는 독일 장교, 인종과 이념을 넘어선 연민과 사랑으로 빵과 옷을 건네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가을비가 여전히 추적 인다. 나뭇가지에 새 두 마리가 그림처럼 앉았다가 베란다 철제 난간에 날아와 조잘대는 소리에 문득 내가 현재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겨울 문이 슬며시 열리겠지. 옷 속으로 시린 기운 가득하고 콧속이 매캐할 정도로 쨍한 추위가 오는 그즈음 주위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지친 이웃은 없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들을 만난다면 온화한 미소로 그들에게 정다운 말 한마디라도 함께 나누며 진정 사람임을 느끼고 싶다.



2021년에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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