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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Jun 12. 2024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 그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보들레르는 시인을 알바트로스에 비유했다. 21세기 이런 작가 있을까?

[대문사진] 프랑스 천재 시인, 작가 아르튀르 랭보


프랑스  샤를르 메지에르 랭보 기념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Henri Fantin LATOUR (앙리 팡탱 라투르) 작품 왼쪽 시인 베르렌느와 랭보



<감동 가득한 사람이야기>

 글입니다.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



우편함을 열어보니 <랭보 협회>에서 온 간행물이 눈에 띄었다. 6구에서 열리는 정기모임 날짜와 시낭송회가 있다는 내용이다. ‘가고 싶긴 한데 시간이 되려나?’ 생각했다.


몇 해 전 가을, 소르본느 대학 근처 에콜 가에 있는 공간에서 하는 행사에 가 본 적이 있다. 깊어 가는 가을밤 시 낭송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일상에 동동거리며 살다가 시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과 함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 폴 베를렌느(1844-1896), 스테판 말라르메(1841-1898)와 더불어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854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샤를르 메지에르에서 태어난 랭보는 문학사에 빛나는 시를 썼다. <감각>, <지옥에서의 한 철>, <모음들>, <취한 배>, <새벽>, <나쁜 피> 등을 발표하며 새로운 시 세계를 열었다.



프랑스 파리 6구 훼루 길,  건물 외벽에 새겨진 랭보의 유명한 작품     취한 배(Le Bateau ivre)


그러나 천재 시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마저 고통스럽게 했으며, 삼십 대에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며 무역을 했다.


여러 곳을 방랑하다 죽음을 앞두고 프랑스로 돌아와 1891년 마르세유에서 이승을 떠났다.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운명처럼 서른일곱에 다른 세상으로 갔다.

두 사람,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는지!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프랑스 시인 랭보 이야기를 하자 몇 사람이 “아! 랭보!” 하며 웃었다. 왜 웃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영화 속 인물에게 붙여진 별명이라 웃었다며 “랭보가 그렇게 유명한 시인인가요?” 외려 내게 반문했다.


그 후 서울에서 우연히 유선방송에서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영화에 ‘랭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등장했다.


과연 영화를 본 사람들이 랭보를 그저 나약하게 그려진 캐릭터의 별명으로만 알 수밖에 없겠단 느낌이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랑스 시인 랭보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천재라고 인정받는 시인 이름을 그렇게 불러서 랭보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영화 속 우스꽝스러운 별명 정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우리 작가를 외국인들이 그렇게 표현한다면 우리도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살이에는
서툰 천재 시인이나 천재 화가들은
경제적 궁핍이나 사회적 질시를 견뎌내며
극한 상황에서 작품에 몰두했다.



요즘이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예술 활동과 삶을 지속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올곧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예술에만 전념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타오르는 열정을 다 피워내지 못하거나 훌륭한 작품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경제적으로 고통받는다.그들은  결국 좌절해서 알코올 중독과 영양실조 등으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랭보는 탁월한 재능은 있었지만 경제적인 궁핍과 혼란의 연속인 예술 세계를 접고 홀연히 척박한 아프리카로 떠나 무역을 했다.


하지만 상징적인 시어를 고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천재 시인은 지상에 살기엔 너무나 서툴렀던 것이다. 살아보려는 그의 의지와는 달리 현실은 그에게 너무나도 혹독했다.


젊은 시절 수려한 외모와
한때 그렇게 빛나던 랭보의 천재성은
불꽃 잦아든 뒤 남는 횟빛 재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모진 세상 속을 헤쳐나가려다
결국 서른일곱 살에 다리를 절단하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는 시인이기에
그 이름은 더욱 처절하고 안타깝다.



알바트로스



때때로 뱃사람들은 짓궂게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에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배를

여행의 동반자처럼

느른하게 뒤따르던 새를 잡는다.


그들이 갑판 위에 새를 붙잡아 놓자마자

창공의 왕은 어색하고 수치스러운 듯한 몸짓을 하면서

가련하게도 커다란 흰 날개가

마치 돛대처럼 양 옆에 달린 날개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조차 어쩔 수 없는지

내버려 둔다.


이 날개 달린 여행자, 그는 얼마나 불편하고 무기력한 모습인가!

그렇게도 훌륭하던 그가 얼마나 추하고 우스꽝스러운가!

한 남자는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건드리고

또 다른 사람은 (창공을 날던) 날개를 다쳐

절뚝거리는 새를 흉내 낸다.


시인은 폭풍 속을 드나들며

사수(射手)를 비웃는 거대한 구름의 왕자와도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상에 유배되어

위대한 날개가 걷는 것조차 방해받는구나!



Charles Baudelaire (샤를르 보들레르)

-상징주의 시인, 미술 평론가-



<알바트로스>는 상징주의 대표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샤를르 보들레르가 185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바다에 사는 새, 알바트로스를 시인에 비유했다.


보들레르는 ‘시인은 직관력과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예지를 지닌 사람’이라 했다.


그러기에 일반 바닷새와 다른 기품 있는 알바트로스에 시인을 비유했으며, 무지한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알바트로스와 현실에서 고통받는 시인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했다.


고귀하고 순수한 시인은 푸른 하늘을 날며 고고하게 살았지만 지상에 유배되어 야만스럽고 비열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조롱과 질시를 견뎌내야 하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시에서 비록 현실은 고되고 힘들지만 언젠가 무거운 유배의 굴레를 벗어나면 다시 날개를 달고 찬란한 창공을 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염원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이나 예술가의 삶은 힘겨울지라도 그런 고뇌와 시련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지친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용기를 준다.


척박한 상황에서 살았던 천재 예술가들이 짧은 생애 동안 혼신의 열정으로 품어낸 작품들은 그들의 고통과 열정에 비례해서 영롱한 진주처럼, 육신이 사라진 후에도 남는 견고한 사리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리라.


“삶을 변화시켜라.”

시인 랭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붙박이장처럼 옴짝달싹 못 한 채 일상에 얽매어 시지포스처럼 사는 나를 일깨워야겠다. 바쁜 일정 다 접고라도 시 낭송 모임에 가보리라.




샤를르 메지에르 뫼즈 강가에 자리 잡은 아르튀르 랭보 기념관
샤를르 메지에르 공동묘지 안에 있는 랭보의 묘. 묘비에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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