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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느 Oct 19. 2024

팬은 아니지만, 조..좋아합니다

2024 이적 콘서트 - 이적의 노래들

본래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다. 학창 시절 한 번쯤 거쳐가는 흔한 덕질도 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덕질하기에는, 나의 관심과 애정이 깊고 길지 못한 탓이다. 나는 대개 나한테만 관심이 있거든..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를 물어보면 난감하다. 가요에 관한 한, 난 정말 취향이 없다. 음악을 잘 듣는 편도 아니다. 당연히 누군가의 콘서트에 가 본 적은 손에 꼽는다.


그렇지만 친한 언니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이적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알고 보니, 언니는 이적보다, 김동률이 게스트로 나온다는 말에 낚였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가수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적의 가창력과 노래들은 좋아한다. 꼭 콘서트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거의 모든 종류의 공연을 사랑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 무대에만 집중한다는 것, 퍼포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내는 퍼포먼스와 그걸 배가해 주는 한껏 꾸며진 무대장치는 언제나 무엇이 되었든 내게 감동과 영감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다 떠나서 ‘하늘을 달리다’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혼자서라면 이적이 콘서트를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다. 언니가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해서 알게 되었고, 티켓팅은 장렬히 실패했지만 (오픈되자마자 4회차가 전부 매진되더라…? 덕질을 해 본 적이 없는 난 이런 티켓팅은 정말이지 똥손이다) 내가 또 취소표 줍기에는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무려 취소표로 연석을 줍줍했다. 연석은 기대도 안 했는데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그렇게 언니랑 손 붙잡고(?) 깊어가는 10월의 어느 토요일, ‘이적의 노래들’을 들었다.




오프닝 영상 상영과 함께 이적님이 등장하셔서 세 곡을 불렀는데 이런, 다 모르는 노래들이다. ㅎㅎ (‘Whale Song’, ‘반대편’, ‘빨래’)

팬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이적의 히트곡만 몇 곡 알고 있는 흔한 관객이기에 예상했던 바이긴 했다.

그럼에도 역시 가창력만은 짱짱했기에 실망은 없었다.

방송으로도 알았지만 라이브로 들으니 역시나 다시금 좋은 건 딕션…. 노래인데도 읊조리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가사가 또렷이 들리는 그 딕션은 독보적이다.


세 곡 후에 이적님이 멘트 하시면서 곡 설명을 해주셨는데 ‘Whale Song’은 곡 설명을 듣고 좋아졌다. 제목도 모르고 들었을 때는 막연히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아스라한 노래구나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고래의 의사소통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라고 했다.

고래는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우우우 하는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 소리가 사람에게는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심지어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도 서로 들을 수 있어서 그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오라고, 혹은 저리 가라고 의사소통을 한단다. 고래의 노래처럼 멀리까지 자신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에 첫 곡으로 선정했다고.


광활한 바다에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어쩌면 알 수도 없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해 보내는 메시지라니. (정작 고래는 그런 생각 안 할지 모름… 지극히 F적인 해석임 주의 ㅋㅋ) 왠지 감동적이다.

나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늘 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 설명이 꽤나 맘에 들었다.

바다를 건너 저 먼 곳의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이어진 곡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숨’, ‘민들레’.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로 편곡했는데 (아 밴드 연주도 진짜 좋았다.. 하긴 이적 콘서트인데 얼마나 잘하는 사람들로 모아서 섰을까..)

반전으로.. 가사가.. 이렇게 슬픈 줄 몰랐는데?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생애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건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30대 후반이 되어 제대로 가사를 들어보니 와 진짜..

젊음도 사랑도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이 있었더랬지.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지.

어쩌면 지금도 그러할 지도.


재밌었던 건 음향도 살짝 불안하고 분위기도 조금은 딱딱했던 오프닝에 비해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할 때부터 이적님도 목도 풀리고 몸도 풀리고 훨씬 편해진 것 같은 모습 ㅎㅎ


처음이란 건 참 그런 것 같다. 매일 하는 일조차 시-작! 하자마자 바로 짠! 하고 100%의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몸이 풀릴 때까지 예열이 필요하다. 노래도 그렇고, 나의 경우엔 발레도 그렇고, 모임 진행할 때도 초반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하다.


인생의 잔인한 섭리다. 피할 수 없는 어색함과 기대감과 긴장의 시기.


서툴지만 집중도도 긴장도도 높은 초반 시기를 지나, 슬슬 몸이 풀려서 본격적으로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온다.


한편 이때부터가 어쩌면 진짜 재밌는 시기일 수도 있는데, 많은 경우 초반의 풋풋함에만 가치를 두지 않는지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도 인생의 풋풋했던 시기가 지나간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 시작은 아름답고 설레지만, 진짜 재밌고 잘할 수 있는 건 그 다음부터일지 몰라 -




다음 무대는 고 김민기 님에게 바치는 헌정 무대.

김민기 님의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이적이 부른 응답하라 1988 OST였던 ‘걱정 말아요 그대’로 이어졌다.

이 무대는 밴드 없이 이적님이 기타 하나만 들고 직접 연주하면서 불렀는데, 밴드와 함께 하는 파워 보컬도 좋지만, 기타 하나와 보컬만 가지고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의 낭만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심플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이 스타일도 너무 좋았다. (어쩌면, 더 좋았다.) 콘서트는 화려함과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지만, 이런 스타일로만 2-3시간 내내 채우는 공연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갈 것이다. (하지만 없겠지 ㅋㅋ 왜냐면 콘서트는 화려함과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니까.)


‘걱정 말아요 그대’는 원래도 가사가 참 좋다고 생각했던 노래다. ‘응답하라’가 한창 방영중이던 한 때는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 지겨워질 정도이기까지 했던 노래지만,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새삼 가사가 진짜 띵곡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지나간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후회없이 사랑했다면 지나가버렸더라도 그것으로 되었다.  


많은 위로가 되었던 곡이었다.


사연 있을 때 들었다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정말 지나가버렸기에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ㅎㅎ

위로만 받는 기분, 나쁘지 않아.


(남은 후기는 2편으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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