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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May 21. 2024

#1. 춘천 썸원스페이지 숲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보세요

어린 시절 집 거실의 소파는 주전자 코처럼 생긴 팔걸이가 마주 보고 있어 그 때문에 생긴 동굴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위에 담요를 덮어두고 들어가면 나만의 아늑한 텐트가 생긴 것 같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첫 북스테이 [썸원스페이지 숲]에서 오랜만에 나만의 아지트에서 느끼던 그 간질거림을 다시 느꼈다.


썸원스페이지 숲의 "썸장님"은 예약 문자를 남길 때 방문 이유에 대해서 써달라고 했다. 방문 이유를 써달라고 하는 숙소는 처음이라 새로웠는데, 왜인지 진솔하게 쓰고 싶다.

"회사에서 10년 근속 리프레쉬 휴가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저만의 북스테이를 운영하고 싶어요...!"


하늘이 청명했던 5월의 어느 날, 춘천 삼포마을의 초록길을 따라오면 나타나는 아늑한 나무집 문 앞에 섰다. 문자로 만났던 썸장님과 두 마리 고양이, 머루와 다래가 나를 반겨주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곳에 없는 것은 TV와 와이파이 그리고 도시의 소음. 있는 것은 수많은 책들, 책을 읽고 있으면 슬그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그루밍을 하는 다래, 각자의 고민으로 회복과 회고를 한 방문자들의 엽서들, 아날로그 감성의 LP 플레이어. 작은 방에 필요한 것들이 짜임새 있게 갖추어져 있는 기분 좋은 균형감이 있었다.


마당에 있는 그네의자에서 햇볕과 바람을 즐기며 책을 읽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얼마든지 멍을 때려도 좋고. 첫째 날에는 숙소 구경을 실컷 하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책을 읽다, 저녁에 예정된 비대면 독서모임을 했다. 두 번째 날엔 김유정 역 근처를 구경하고 돌아와 독서-멍 때리기-낮잠의 반복. 그리고 저녁에는 썸장님과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IT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더 늦기 전에 자연 속에서 살고자 본인의 고향인 춘천으로 귀촌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강화도에서 양도받은 펜션을 하다, 춘천으로 돌아와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고, 그 후 생긴 것이 이곳 썸원스페이지 숲이라고 한다. 그 사이에 시행착오 - 특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 를 겪었단다.


썸숲은 모든 손님을 100% 대면으로 맞이한다. 대면으로 전부 다 맞이하면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물음에 대면하지 않으면 저는 청소만 하는 사람이 되더라고요.라고 답하는 그를 보며, 본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단단하게 경험하셨구나,라고 생각했다.


숙박업을 하며 자신은 무례함을 견디지 못하고 얼굴에서 너무 티가나며 오히려 유리멘탈인 것을 알게 되었단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여 북카페 컨셉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고, 홈페이지에 숙소에 대한 상세 하면서도 인간적인 설명을 써두고 방문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런 곳을 꼭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보세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10년간의 회사생활.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고 무기력함을 느끼던 와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떠오른 게 북스테이였으므로 그 말이 조금 반가웠다.

항상 마음 한편에 생각하며 직장동료들에게 농담 삼아하던 말이었다. '나 나중에 게하할거니까 놀러 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나온 막연한 아이디어였다. 좋은 첫인상을 남길 줄 알고, 사람들 말에 공감할 줄 알며, 누군가를 웃기는 것, 호스트 하고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독서모임과 글쓰기모임을 꾸준히 하며,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다. 나아가 그런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고.


썸장님은 또한 유행보다는 변치 않는 무언가를 찾으라 말한다. 이 공간에도 세련된 미드센츄리모던 보다 변치 않는 가치 - 편안함, 따스함, 인간적임 - 을 담고자 했다고. 그렇게 완성된 우드톤의 아기자기한 작은 방에는 책상에 딸아이와 찍은 가족사진을 두기도 하고, 손님들을 방명록과 엽서를 두어 서로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었다.


결국 '주는 사람이 행복해야 받는 사람이 행복하구나'라는 쉽지만 어려운 진리를 실천하는 그의 철학이 느껴졌고, 그것이 이곳을 자꾸 찾아오고 싶고 나만의 아지트 같이 느껴지게 하는 힘이었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꿈이다. 속으로만 막연하게 간직했던 꿈을 최근에서야 소리 내서 말하기 시작했다. 꿈을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고. '그 나중이 언제인데?'라는 물음이 내내 마음속에 걸렸는데, 바람 속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았던 꿈을 붙잡아 단단한 대지에 심어 씨앗을 틔워보려고 한다. 막막하고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지만, "이미 시작하고 계신 거예요. 새로운 공간이 생기면 꼭 알려주세요."라는 썸장님의 말에 조금 용기를 내어본다.


시작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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