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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Feb 17. 2024

디지털로 시작한 3년 차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회사에도 지원서를 넣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줄곧 한국은행만 준비했었기에 다른 기관의 시험은 경험해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나는 합격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며 다져온 경험과 지식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합격이 나에게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합격이 쉽다고 느낀 만큼 기쁨의 정도도 그만큼 줄어드나 보다.

그럼에도 공부를 시작하고 줄곧 불합격 메시지만 받으며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었는데, 처음으로 합격의 맛을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새로운 길은 조금 순탄하려나?




여러 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역시 사람의 인생은 절대 순탄할 수만은 없다.

새로운 길이 절대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면접'이었다.


나는 면접이 내 발목을 붙잡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회사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진 않아도 조직 생활을 해봤던 경험이 적어도 면접관 앞에서 나를 주눅 들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 부족해 보이는 것은 금융과 전공 관련된 지식이고, 시험을 합격한 순간 이러한 부분들은 대부분 극복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오산이었다.

지난 2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공부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회성을 잃어버렸다.

'문제와 정답'이라는 틀에 갇혀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면접관의 질문에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 온 답변만 읊었을 뿐, '나'라는 사람을 드러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물론 갑과 을이 명확한 면접장에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설프게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해 내는 옆 지원자들과 달리, 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내가 준비해 온 답변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을 골라 대답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퇴사 이후 줄곧 공부만 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한국은행 시험을 준비했다고 얘기했으면 호기심이라도 생겼을 텐데, 다른 회사 면접장에서 특정 회사를 언급하기가 민망했는지 나는 필기시험을 준비했다고밖에 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 답을 한 순간 '저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특출난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면접장에 온 모두가 시험을 통과하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면접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최종합격까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나의 사회성을 회복하고 공백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인턴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잠깐이나마 사회생활을 다시 해볼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저는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이곳에서 인턴을 했습니다'라고 어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좀 더 끌어당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디지털'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 역량이 +a로서 작용했다면, 지금은 자기소개서에서부터 디지털 역량과 관련된 문항이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IT직렬이 아닌 일반 신입직원에게 전문적인 개발이나 코딩의 경험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도 디지털 역량에 대해 스스로 정의해 보고, 사소하더라도 그에 맞는 경험을 어필하는 정도다.

나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에 대처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지원자들과는 조금이나마 달라야 했다.

한국은행을 포기한 이상 전공을 깊게 공부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는 경쟁력이 부족할 것 같았다.

내가 인턴을 포기하고 디지털을 선택한 이유다.

단순히 디지털 역량에 대처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코딩을 통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한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금융업계로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파이썬과 같은 도구를 활용해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쌓게 해 주고 수료증도 발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딱 원하던 과정이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을 수료한다고 해서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수강생들이 이 프로그램과 연계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한 고용 증대를 도모하는 것이 엄밀한 목적이다.


하지만 나는 IT 대기업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진행하면서 느낀 점들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이 프로그램이 6개월짜리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나의 공백기를 해소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의 3년 차는 이 과정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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