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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27. 2024

헬스장의 그녀

기억에 남는 사람

 한동안 헬스에 빠져 살던 시기가 있었다. 주위에서는 왜 다이어트를 하냐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적당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살이 찐다는 느낌은 자신은 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소파에 앉아 일어나기를 거부했고, 야식의 유혹에 쉽게 빠졌다. 겉으로 표가 나지 않다 보니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면 '먹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불규칙적인 시간에 불규칙적인 영양을 섭취했다. 

 "이 옷이 이렇게 꽉 끼였나?"

 언제부턴가 옷들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답답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넉넉한 품을 가진 블라우스를 즐겨 입게 되고 고무줄이 있는 바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체중계 숫자들이 한 자리씩 바뀌기 시작할 때마다 뭔가 활력을 찾을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살을 빼야겠다는 것은 곧 힘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이고, 채소위주의 소식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기에 최대한 모른척하며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되는 몸이다.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가면 일상생활이 버거워진다. 척추주위의 근육이 힘이 약해지고 뱃살이 많아지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는 몸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날들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허리가 아픈 날들도 점점 많아졌다. 설거지를 할 때나 세수를 할 때 몸을 앞으로 숙이는 자세를 취하면 허리가 뻐근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앉아 있는 자세가 안 좋은데 계속 앉아서 일을 하면 허리에 통증이 왔고 일어설 때도 바로 허리가 펴지지 않아  잠깐 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날들도 생겼다. 허리가 아프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졌다.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나면 허리가 아팠고 잘 때도 자세가 편하지 않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살을 빼서 날씬한 몸매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살을 빼서 아프지 않은 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운동을 할까 정할 때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헬스였다. 에어로빅이나 점핑도 해보았지만 단체로 하는 운동이 나에게 맞지 않았고, 열심히 뛰다 보니 무릎과 발목이 아팠다. 헬스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가서 조용히 운동을 하면 되었고 샤워를 하고 바로 출근을 하기에도 편했다. 근처 헬스장을 찾았다. 친절한 트레이너의 설명에 따라 열심히 순서를 정해 운동을 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은 나의 성격과 맞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오히려 잡다한 생각을 사라지게 했다.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고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헬스장에는 몸이 좋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혼자 운동을 해서 그렇게 좋은 몸을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 이왕 하는 거 본격적으로 배워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PT를 잘 가르쳐준다는 헬스장으로 옮겨 트레이너에게 상담을 받았다. 개인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변화되는 몸을 느끼고 나니 수업이 간절해졌다. 수업은 잘 진행이 되었다. 매일 헬스장에 가서 2시간 운동하고 닭가슴살을 사서 먹었다. 운동은 힘들었지만 이겨냈다는 성취감이 좋았고, 닭가슴살이 비리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 입맛에는 맞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무게는 줄어들었고 근육은 붙었다. 허리는 아프지 않았고 옷들은 헐거워졌다. 힘이 생기자 2시간 운동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전에 3시간을 운동하고 출근했다. 토요일에는 4시간을 훌쩍 넘겼다. 근육이 올라오고 덤벨의 무게가 높아질수록 헬스장의 기구들이 사랑스러워졌다. 레깅스를 입고 탑에도 도전을 했다. 처음에는 배를 드러낸다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주위에 탑을 입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이상하게 보는 눈도 없었다. 오히려 몸매가 너무 좋다는 말을 들으며 식단은 어떻게 관리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생겼다. 조금만 더 하면 대회에 나가도 되겠다는 말을 들을 쯤에는 진짜 이렇다가 대회에 나가서 상 받는 거 아니야라는 환상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마주치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오며 가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헬스를 한 지는 오래되었으며 근육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녀와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피트니스 대회 준비를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데 매일 헬스를 하며 대회까지 출전하다니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녀와 같이 운동을 하며 침착하게 대회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거울을 보면서 포즈를 연습하고 대회복을 맞추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더 운동해서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생각까지만 했다.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겁이 많았다. 그녀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녀는 진주에서 하는 피트니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몸에 갈색 오일도 발라야 하고 옷이며 물건들을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가 같이 가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난생처음으로 피트니스 대회를 구경하게 된다니 그것 만으로도 설레었다. 

  대회 당일이 되었다. 우리는 진주로 향했다. 대회가 열리는 체육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복도와 야외에 돗자리를 펴고 운동을 하고 포즈 연습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들도 물론 열심히 준비했겠지만 수상을 목표로 무리한 식단을 강행한 친구기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고 조명이 켜졌다. 선수들은 무대로 올라와 온몸에 힘을 주며 지금껏 노력해서 얻어낸 자신의 근육들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긴장이 그대로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기량을 맘껏 뽐내지 못한 선수들의 낙담한 모습에서는 나도 안타까워 발을 구르게 되었다. 드디어 그녀의 순서가 되었다. 끝에서 두 번째로 출전한 그녀는 생각보다 여유로웠고 휘파람 소리와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고 떠는 손으로 트로피를 받는 모습이 부러웠다.

 대회에서 상을 타고 헬스장에 플래카드가 붙은 이후로 그녀는 바빠졌다. 운동을 계속하고 대회에도 계속 나가고 싶다는 그녀는 대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헬스장으로 옮길 것이라고 했다. 같이 운동하자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계속 응원하겠다는 말로 웃어넘겼다. 그 이후로 그녀와 연락이 끊겼다. 헤어지기는 했지만 가끔 헬스장 간판이 보일 때면 그녀가 궁금해진다.  지금쯤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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