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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27. 2024

완두콩

완두콩 꼬투리를 까다가

 시골에 다녀온 남편의 손에 양파가 담긴 망과 검정 봉투가 대롱거린다. 땅을 놀리지 않는 부지런한 어머님 덕분에 매번 많은 혜택을 본다. 봉투를 열어보니 갓 딴 완두콩 꼬투리들이 봉지 가득 들어있다. 반은 삶아 먹고 반은 까서 밥에 넣어 먹으면 될 것이다. 가스레인지에 완두콩을 넣은 냄비를 올려둔 뒤 양푼이를 들고 거실에 앉았다. 딸아이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봉투를 열어 보여주었다.

 "우와~완두콩이다. 지금 깔 거야? 나도 할래."

 아이와 나는 마주 보고 앉아 완두콩 꼬투리를 깠다. 완두콩 냄새가 풋풋하다. 양푼이에 톡톡 떨어지는 소리도 귀엽다. 하나씩 껍질을 벌려 완두콩을 꺼내는 게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나는 이런 게 좋더라."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어떤 거?"

 "이런 거 말이야. 완두콩 꼬투리를 따서 까는 거. 예전에 너희 언니 낳고 4년 정도 시골에서 할머니랑 같이 살았었거든. 주말이 되면 평상에서 완두콩 꼬투리도 까고, 마당에 메주콩도 털었지. 그러고 나면 또 콩을 밥상에다가 펼쳐놓고 깨끗한 것으로 골라내야 해. 햇볕에 말린 빨간 고추도 닦고 했었어. 열 포대는 닦았을걸. 농사짓는 힘든 일을 제외하면 시골에서 하는 일 대부분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들인데 엄마는 그게 그렇게 평온하고 기분이 좋더라고. 지금 이렇게 꼬투리를 까고 있으니 그때 기분이 나서 말이야."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삶아진 완두콩에서 폴폴 김이 올라왔다. 소금을 살짝 넣고 삶았더니 달짝지근하고 짭짤한 맛이 느껴진다.

 "음~너무 고소하고 맛있다. 너도 먹어봐."

 "난 콩 먹는 건 싫은데... 하나만 먹어볼게."

 아이는  손으로 깐 콩의 맛이 궁금하기도 할 텐데 정말 딱 한 톨만 먹는다. 그 한 톨도 '먹기 싫어도 한 번은 먹고 결정해야 한다.'라는 잔소리를 반복한 덕에 그나마 발전한 것이다. 완두콩이 주는 자연의 맛을 모르는 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닐까. 나는 아이에게 콩을 먹이려 하고, 아이는 콩을 안 먹으려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자라면서 처음 접하는 식재료나 음식들에 대해 호기심보다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먹지 않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중 막내의 편식이 심하다. 아이를 낳고 골고루 먹이려고 다양한 이유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커가면서 느끼게 되는 자극적인 맛에는 이길 재간이 없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나도 가리는 음식이 있었겠지. 콩밥을 먹기 싫어했던 기억이 나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반찬 투정을 했던 기억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먹이려 노력했던 부모님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온 부모님께서는 밤참을 자주 드셨는데 그때마다 언니와 나에게도 먹어보기를 권했다. 우리는 무서운 아버지 덕에 좋아서도 먹고 싫었어도 먹었다. 은행을 구워 먹었다. 곰장어도 구워 먹었다. 선지도 먹고 생알로에도 먹은 기억이 있다. 벌이 있는 게 보이는 밀랍 꿀도 밤마다 한 숟가락씩 먹었다. 음식들이 주는 강렬한 첫인상 때문인지 그날의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너희들 음식 골고루 먹이려고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노력한 줄 아나?"라며 말을 늘어놓았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 고등어를 처음 먹어보았다는 것이다. 고등어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아빠가 고등어를 싫어해서라고 했다.

  어른의 기호에 따라 아이의 식습관은 변하기도 한다. 내가 고등어를 먹어보지 못하고 컸던 것처럼 관심이 없는 음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지만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꼭 먹어보라고 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꼭 먹이고 싶은 고집’이 통하는 날이 종종 있다. 

 큰딸이 모처럼 휴가를 받아서 내려왔던 날 회를 먹으러 횟집에 갔었다. 회를 먹지 않는 막내는 식사 내내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앉아있었다. 회를 좋아하는 큰 딸과 한 점씩 먹다 회 맛을 알아버린 둘째가 막내를 어르기 시작했다.

 "언니도 처음엔 싫어했거든. 근데 지금 봐. 너무 잘 먹지. 봐봐"

 둘째가 초장을 듬뿍 찍은 회를 입에 넣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씹었을 때 물컹한 게 싫어서 그런다고"

 우리는 오늘 무조건 막내에게 회를 먹여보자고 눈짓을 교환했다. 사탕 같은 달콤한 말로 쉴 새 없이 설득을 했다. 설득이 통했는지 막내는 회를 먹었고 우리는 박수를 치며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지금은 횟집에 가면 곧잘 회를 먹는다.

 첫째도 둘째도 새로운 음식에 거부반응이 보일 때면 쉴 새 없는 설득과 격한 반응을 해주었다. 엄마도 나를 그렇게 키웠을까? 내가 싫다고 할 때마다 숟가락이 비행기가 되고, 사탕을 손에 쥐여 주었을까. 부모님의 노력으로 못 먹는 것 없이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으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좋든 싫든 자식들의 식습관을 위해 부모들은 부단한 노력을 한다. 나의 부모님이 편식을 없애주고 음식의 맛을 알게 해 주고 제철 음식들을 먹이려 애쓰셨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그러하다. 하나라도 먹고 먹을지 말지를 정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노력으로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두릅이 생각나고, 죽순이 생각나고, 은행이 생각난다. 그날의 추억이 같이 떠오른다.

 양푼이 한가득 담긴 완두콩을 보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내일은 완두콩을 가득 넣고 밥을 해야겠다. 아이들은 또 콩밥을 안 먹는다고 투정을 부리겠지. 그래도 조금만 먹어보라고 어르고 달랠 생각이다. 먼 훗날 완두콩을 보며 이거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겠다고 말하는 막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지금의 나는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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